몇 달 전 아오스딩과 가까운 지인 부부가 인천에서 진주 시골 마을로 찾아왔다. 그들 부부는 40년간 개신교 신자였는데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교리를 받고 있으니 대부, 대모를 서 달라고 했다. 아오스딩과 나는 기꺼이 대부, 대모가 되어 주기로 약속했다.
시간이 흘러 부활절을 앞두고 세례식 날짜가 정해졌고 우리는 4시간을 달려 인천의 성당으로 갔다. 지금은 번듯한 건물에 신자 수가 일만여 명을 넘어서는 그 성당은 아오스딩이 천막 성당 시절을 함께했던 장소였다. 아오스딩의 대자 이사야와 내 대녀 안젤라가 기쁘게 맞아주었다. 그들의 외아들 도미니코도 아오스딩의 대자가 되었는데 미리 귀띔을 안 해 주어서 도미니코의 선물을 챙기지 못했다. 이날 나는 마음이 들뜨다 못해 가슴이 먹먹했고 설레기까지 했다.
그리스도를 받들어 섬기도록 도와줄 준비가 돼 있습니까? 사제가 물었다. 도와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대녀 안젤라가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았다. 그녀의 아들 도미니코도 눈물을 흘렸다.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대모를 선 지 삼십여 년이 지났으니 늘그막에 영혼의 자녀를 얻은 감회가 새로웠다. 그동안 서너 명의 대녀를 두었는데 그들과는 소통하지 못하고 생사조차 모른 채 살아왔다.
본당 수녀님이 주선하여 뭘 모르고 대모가 된 경우도 있었고 구역장이 부탁하여 대모를 서기도 했으며 마지막으로는 여동생 친구를 대녀로 두기까지 그 세월이 길었다. 가족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 간 대녀도 있었고 세 살배기를 대녀로 두기도 했으니 반짝 맺어진 인연은 짧은 관계로 끝나고 말았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제대로 된 대모 노릇을 할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는데 기도 중에 꼭 대녀 가족들을 기억하곤 한다.
가톨릭의 대부와 대모 관습은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오며 교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대부와 대모의 직무는 예비신자에게 복음의 실천을 자신의 생활과 사회생활로 보여주고, 의심과 고통 중에 도와주고 예비신자의 신앙생활을 보증하며 영세한 후에도 신앙과 그리스도적 생활에 항구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회법 872조(굿뉴스 가톨릭 길라잡이)는 대부 대모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그날 세례식이 끝나고 대자녀 가족과 저녁식사를 같이했다. 몇 가지 성물과 시골에서 갖고 간 감식초와 유정란, 딸기잼을 주고 헤어졌는데 안젤라는 다음날 아침 온 가족이 딸기잼을 빵에 발라 먹으며 울었다고 했다. 친정 부모가 미국에 이민을 가서 친정 없이 삼십 년을 살았는데 마치 친정엄마가 준 선물 같다고 행복해했다.
문득 의정부에 살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가 떠올랐다. 그녀는 천주교에 입교할 의향이 있음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지난 3월에도 나를 찾아 진주로 내려왔는데 그때 나는 빨리 세례를 받으라고, 복잡한 세상에 인간이 살다가 한순간에 어찌 될지 아냐고 대화 중에 넌지시 말을 건넸다. 심지어 대모 서줄게, 라는 말까지 나와 버렸다. 다음에는 대모 서러 의정부를 가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