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당그래산을 오르며

posted Jul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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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홍예성 바울라 수필가 / 가톨릭문인회

친구가 왔다. 그는 전화를 할 때면 언제나 당그래산에 가고 싶다고 하던 친구다. 그와 나의 고향 관선마을은 옛집이 없어지고 집터는 논으로 변해버린 탓에 뒷동산 당그래산만이 고향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다. 당그래산의 능선은 아궁이 재를 끌어 모으는 당그래 모양처럼 부드러워서 어린 우리들의 포근한 놀이터였다. 


친구와 함께 고향 마을을 향해 곧장 길을 떠나 강변도로를 달리다가 당그래산 뒤쪽에 주차했다. 옛적엔 땔감을 산에서 구하던 때라 당그래산엔 작은 풀들만 남아 우리가 편안히 뛰어 놀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키 큰 나무로 가득 차서 길을 찾을 수도 없었다. 허탈해 하는 친구를 위해 작은 오솔길을 찾아내어 오르기 시작했지만 어느 무덤에서 길이 끝났다. 스틱으로 망개 넝쿨을 걷어 내며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목표로 올라갔다. 가끔 산돼지 발자국도 보여 긴장했지만 또다시 오솔길이 나와 올랐으나 어느 산소에서 또 끝이 났다. 그래도 인도해 준 산소 길이 고마워 무덤 앞에서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기도를 드렸다. 

 

“이 세상의 순례 길을 가는 동안 죽은 이를 아버지 손에 맡겨 드리기 위하여 끝까지 그와 동행하며 영광 중에 다시 살아날 육체의 씨앗을 희망을 가지고 땅에 묻”은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걸어가 같은 곳에서 다시 만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 때문에 결코 헤어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 제1683항, 1690항 부분 인용). 주님 이들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죽은 이를 기억하게 한다. 

 

나는 이 교리항목을 기준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세례를 받지 않은 이도 모두 품에 안으실 것이라 믿는다. 예수님께서는 “양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요한10,16)고 하시지 않으셨는가? 우리는 모두 함께 손잡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희망의 순례자이다. 


무덤을 찾아오는 이들이 마련한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무성한 숲에 가려 고향 마을 일부만 나뭇잎 사이로 보였다. 추억을 회상하며 즐길 겨를도 없이 내려오는 길에도 숲으로 둘러싸인 무덤이 이어졌다. 어린 시절 이곳은 모두 작물을 재배하는 넓은 밭들이었는데, 삶 대신 죽음의 끝인 가족무덤이 있었다. 개신교 신자인 친구는 살아 있는 이들을 축복하는 기도만 한다고 하였다. 장례미사와 장지에서 예식을 지켜보는 비신자 조문객들은 가톨릭기도에 감동한다. 친구는 하느님을 믿고 나는 믿음을 청하며 그분의 삶을 따른다. 다른 입장의 믿음이지만 같은 하느님의 자녀인 친구와 나의 기도는 서로를 이을 것이다. 


그와 나는 죽음에서 다시 삶으로, 유년의 기억에서 황혼의 지금으로 이어주는 당그래산을 무사히 만나고 온 기쁨에 노래를 불렀다. “내놀던 옛 동산에 이제와 다시 서니 ~~” 이은상 시조에 홍난파가 작곡한 지 거의 백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 더 깊어진 이 노래 말에 공감하며 우리의 옛 추억을 고스란히 지켜주고 함께한 당그래산이 거기 있음에 감사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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