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쯤이었다. 산더미 같은 일을 잠시 멈추고 남편과 결혼 30주년 여행길을 떠났다. 남편이 최초로 제시한 이 호사스러운 계획에 동참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나서기로 했다.
스위스의 가톨릭 중심지인 프리브르에 머물렀다. 강을 따라 1157년부터 형성된 중세 마을과 고지대에는 현대적인 도시가 발달하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었다. 중세 마을의 집은 변함없이 서 있는데 집 안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반복되면서 새롭게 채워지고 있었다. 학교를 마친 한 소년이 총총거리며 그 오래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다른 공간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어 그 집 창문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박물관으로 박제된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공간으로 현재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도시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는 11개의 종소리가 합창이 되어 퍼지는데, 거의 15분에 한 번씩은 울리는 것 같다. 중세 시대부터 사람들은 이 종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일상과 종교적 시간을 인식하며 신앙공동체를 형성했을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자주 울리는 종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듯 종소리에 반응할까? 종소리에 무덤덤해지거나 오히려 잦은 종소리에 진절머리를 내지는 않을까? 이와 관련하여 불확정성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한결같은 종소리는 이곳 사람들에게 예측 가능성, 심리적인 안정감 및 연대감을 부여한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나는 여행 중 잠시 종소리를 들으며 평화로움과 거룩함의 일상을 체험하는 순례자가 된다.
남편으로부터의 자유 시간에 역사 미술관을 지나칠 것인가 고민하다가 ‘이 마을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끌림에 들어갔다. 미술관 관람자는 나 혼자였다. 예수님이 허리와 목에 가죽끈을 매달고 병사들에게 고통스럽게 끌려가고 있었다. 병사들은 손가락으로 조롱하며 망치로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으며, 예수님은 뼈가 드러난 깡마른 모습으로 얼굴을 떨구고 있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몸에서는 가시관을 쓴 머리에서부터 날카로운 창에 찔린 옆구리, 발끝까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예수님이 창에 찔린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를 응시하며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저렇게 고통스러우셨나?’ 예수님의 상처 하나가 내 가슴에 콕 박히는 것 같았다. 미술관을 나와서도 예수님이 겪고 있는 처절한 고통의 발견에 꽂혀 걷다가 길가의 턱에 그만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안경 모서리가 창이 되어 눈가를 찔러 피가 흐르고 손목은 부어올랐다. 과거의 공간에서 마주친 예수님의 극심한 고통은 현재 나의 삶 속에서 부르짖는 고통을 비추고, 나는 예수님과 마주 앉아 고통에 대하여 기쁘게 질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