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병원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입·퇴원을 반복하다 올해 1월, 다시 중환자실에 들어오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의사는 부친이 주말을 못 넘길 것이라 했다. 성모님께 청하며 여러 번 고비를 넘겨왔는데 이젠 이별의 순간이구나 싶었다. 서울 자식들은 주말에 맞추어 내려왔다. 치매를 앓는 모친은 곁에 남편이 보이지 않자 어디에 있는지 자꾸 물었다. 마지막 대면을 시켜 드렸을 땐 말이 없었다. 배우자 없이 살아갈 날을 걱정하는 것은 자식의 몫일 뿐. 작년에도 부친은 심장에서 통증이 올라올 땐 입버릇처럼 “이제 다된 것 같다”라고 하였다.
삶보다 오히려 죽음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가 모르는 ‘그날과 그 시간’을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꼈으리라. 그래도 자식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고, 나는 더하여 예수 성체의 기적을 묵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주교 시절에 체험했다는 실화로 알려져 있다. 물이 든 그릇에 넣어둔 성체가 피와 살로 변했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인간의 조직이자 예수님의 심장 살점으로 밝혀졌다. 그 성체 사진을 보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애타게 찾았다.
주말을 넘기면서도 살아 있는 부친을 남겨두고 자식들은 귀경길에 올랐다. 다된 심장 기능임에도 현대의학은 박동을 끌어올렸다. 그럴 때 대부분 환자는 고통을 더 느낀다. 자식 된 도리가 아니었다. 응급실에 오기 전에도 부친은 퉁퉁 부은 손으로 거부표시를 했고, 자식은 임종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지금은 후회한다. 결과론적으로 볼 땐 그때 판단을 반성한다.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의 시간 앞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주일 미사참례도 병원 앞 성당에서 했다. 그곳은 공교롭게 부모가 연애하던 시절에 다니던 성당이었다. 따뜻한 추억과 고통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직감적으로, 임종을 대면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불안해졌다. 문득 젖먹이 딸을 두고 눈감은 십여 년 전의 아내를 생각하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러다 로비에서 깜빡 졸았는데, 제지하는 경비원의 말을 듣고서 밖으로 나왔다. 추운 겨울 공기가 품을 파고들었다. 하릴없이 몸을 녹이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는데 방전이 되어 있었다. 예감이 안 좋았다. 한 시간 뒤,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왔다. 순간 직감했다. 빨리 올 수 있느냐는 간호사의 질문에 바로 가겠다고 답했다.
먼동이 트기 전 이른 아침이었다. 중환자실은 고요했다. 바이털 신호는 내려가 있었다. 그동안 당신 뜻을 거스르며 아픔을 더해드려, 죄송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부친의 귀에 대고 말하였다. 임종 때 기도가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견뎠을까. 현재로 돌아와 나는 생각한다. 머지않아 나도 눈감게 될 날을. 그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주님께서 오시는 순간조차도 언제인지 알 수 없으므로, 성경 말씀 하나 새겨본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오 25,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