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주무시다가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는 인제 가는 길만 남았다이가….” 그 말은 곁에 두고 싶지 않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잠자리의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그 길을 상상해 본다.
가는 길, 즉 죽음을 가는 길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태어나는 것을 오는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옴’의 기쁨보다는 ‘감’의 슬픔에 더 중점이 주어져서 그런 것인가 생각도 해본다.
얼마 전 동생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어시장에서 생선과 해산물을 판매하는 일을 하던 친구라 미더덕을 잘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성실히 살아서 대견해 했는데 현금을 만지다 보니 유혹이 많았던 모양이다. 도박에 빠져 돈을 날리고 가정도 파탄이 났다고 했다. 어찌어찌 살아간다는 얘기만 들려왔을 뿐, 안타까운 소식만 거듭되어 우리도 소식이 끊긴 채 잊고 지내던 친구였다. 혼자 있다가 화장실에서 쓰러졌고, 발견이 늦어졌다고 했다. 그나마 아들이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만나러 왔다가 그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단다.
홀로 있는 삶, 그 속의 죽음도 외로웠다. 그를 위해 기도를 하고 싶었다. 미사를 드리러 성전으로 들어서니 예수님은 그 가운데 계셨다. 개신교의 십자가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했다. 천주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다. 한번은 주님이 십자가에 계시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자꾸 바라볼수록 아팠고 괴로웠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주님의 처절한 죽음을 목격하고, 마음이 뭉개지는 고통을 느껴야만 하는가 보다.
마음의 갈피를 잡기 힘들 때 내 자리는 어디인가 묻곤 한다. 과연 이 세상에 내 자리는 있는 것일까? 어린 친구들도 그 질문을 수없이 해대며 돌아다닌다.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도 내 자리는 이 세상에 없다고 느낄 때 서늘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두 팔로 감싸안고 나를 최대한 웅크린다.
‘예수님, 제 자리는 어디일까요? 저는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일까요?’
감싸안았던 팔과 다리를 펴고 그대로 힘을 빼고 누워 벽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본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채로 그 자리에 계신다. 제자리를 찾아 수없이 헤매다가 돌아온 예수님의 발밑이 바로 내 자리였던가 보다. 제자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나를 몰아세운다. 하느님께로 가는 그 길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임을 다시 깨닫고 기도드린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앞에 계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늘 자리 탓을 하는 저를 꾸짖어 주소서.
항상 제 자리는 주님 곁인 것을 잊지 말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