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쐴 겸, 장을 보러 집에서 가까운 재래시장에 갔다. 걷다 보면 끝에서 끝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시골 동네 시장이다. 한쪽 귀퉁이에서 가난을 깔고 앉은 듯한 할머니가 부추와 익힌 고추장아찌 그리고 이름 모를 나물을 팔고 있었다.
그 식재료들은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어 사려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셈이 서투른 할머니에게 한 소쿠리에 삼천 원 하는 부추를 오천 원을 주고 샀다. 그리고 재빨리 다른 가게로 갔다.
장을 다 보고 나가려다, 할머니가 물건들을 팔지 못하고 쌀쌀한 날씨에 하루 종일 시장에 쭈그리고 앉아만 있다가 집으로 가게 되면 어쩌나 자꾸 마음에 걸렸다. 다시 돌아가 만 원을 주고 부추 한 소쿠리를 더 샀다. 그리고 사람들이 와서 많이 사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시장을 빠져나왔다.
시장 옆에는 마음씨 좋아 보이는 젊은 분이 운영하는 커피가게가 있다. 그곳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그 주인에게 부추 한 봉지를 내미니 웃음을 띠며 고마워하였다. 곧이어 커피와 맛 보라며 갓 구운 쿠키를 가져다주었다. 따뜻한 마음은 돌고 돌았다.
커피를 마시다가 어느 신부님께서 강론 때마다 “하느님 안에서 착하게 살아가세요.” 하던 말씀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 안에서 착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창세기 말씀에 답이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당신은 하느님 안에서 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라는 근본적이고 단순한 질문을 한다면 “예, 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선뜻 답할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은 늘 공존한다는 사실을 회피한 채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살아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고 단지 흙일뿐인데 자주 본 모습을 망각하며 하느님처럼 되려 하기도 한다. 또한 사랑과 나눔은 소홀히 한 채, 나 자신과 내 가족만을 위한 삶에 치중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삶이 끝나고 하느님께로 갈 때, 무엇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설 것인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이 말씀을 잘 실천하기에 역부족인 나이지만, 가까이 가려고 마음을 쓰는 삶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는 할머니의 부추를 옆에 두고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김이 피어나는 커피잔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