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 빠르다. 부활주일을 엊그제에 보낸 것 같은데 벌써 성모님의 달이 되었다. 그 사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나리, 벚꽃, 진달래, 철쭉 같은 꽃들이 지고 장미꽃이 피고 있다. 5월의 신록은 푸르름과 기쁨과 행복을 준다. 그래서인지 기분 좋고 듣기만 해도 설레는 각종 기념일이 모두 5월에 모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득 부활절 특강을 해 주신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신부님은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한다고 모두가 말하는데, 무엇이 기쁜 것입니까?” 하고 물으셨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이 기쁜 것인가, 아니면 사순 시기에 괴롭고 힘들었던 것에서 벗어나서 기쁜 것인가 하고 되물었다. 대체로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모른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괴롭고 슬픈 고통을 인내하고 절제하는 사순 시기를 보내고 나면 기쁨의 부활을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덧붙여서 기쁨과 성공을 이웃과 함께하는 삶이 진정한 부활이라는 의미도 부여해 주셨다.
그때 나에게 어느 원로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 시인은 우리 문인들이 칭찬에 인색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신문이나 잡지 또는 언론에 지인 문인들의 기사가 나거나 작품이 발표되면 꼭 전화해서 축하를 해 주고 근황도 듣는다는 것이다. 창작집을 출간하거나 문학상을 수상하는 자랑스러운 기사에 다른 사람보다 같이 글을 쓰는 사람이 먼저 축하해 주는 것은 당연한 거라는 것이다. 크게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유독 문인들이 인색하다고 하였다.
우리는 주변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일에 가족이 아니면 무관심한 것 같다. 어쩌면 시기와 질투의 마음에 모른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과 직접적이지 않은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 더 적당할 것이다.
슬픔을 함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기쁨을 함께하는 것은 선택처럼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보다는 슬픔을 함께하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쁨은 서로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감성이다. 신부님의 강의처럼 기쁨과 성공도 함께하는 삶이 오늘을 사는 진정한 부활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로 시인의 말을 듣고 난 이후, 언론에 내가 아는 문인들의 기사가 나오면 꼭 문자나 전화로 축하를 전하곤 한다. 문인이 아니어도 주변 지인들에게 좋은 일이 들려오면 축하의 말을 건네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그 원로 시인이 떠오른다.
5월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짧은 안부를 전하며 기쁨을 나누는 행복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