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구 전사前史 36

거제도 교우촌 (5)

 

1886년 한불韓佛 조약이 맺어진다. 한미韓美 조약 4년 뒤의 일이다. 프랑스는 조선과 조약을 맺으려 가장 먼저 애쓴 나라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어졌을까? 프랑스 역시 미국, 영국과 함께 조선 정부에 조약을 신청했다. 그런데 중재仲裁를 맡았던 청淸나라에서 프랑스에는 조건을 달았다. 조선에서 천주교 전파를 중지하겠다는 조문條文을 넣으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4년이 늦어진 것이다.

당시 조선 교구장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블랑(Blanc 白圭三) 주교였다. 그는 조선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뮈텔(Mutel 閔德孝) 신부를 프랑스로 파견한다. 정부를 설득해 한불조약을 빨리 성사시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조약은 5월 3일 성사되고 비준批准은 이듬해(1887년) 5월에 있었다.

한불조약의 우선 대상은 조선에 거주하던 프랑스인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의 활동이 제한적이나마 허용된 것이다. 이후 프랑스인 선교사는 제한된 지역 안에서 조선 정부가 발행하는 호조(護照 여행허가권)를 가지면 여행도 할 수 있었고 공적 활동도 가능했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는 인정되었지만, 그것은 프랑스 선교사에게 허용된 것이지 조선인 전체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조약의 결과 역시 서울에 국한되어 있었고 지방에선 통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천주교는 여전히 나라에서 금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불조약 뒤에 일어난 윤봉문의 체포와 순교는 이런 배경 아래서 발생한 사건이다. 

윤봉문尹鳳文의 가족은 동래(부산)에서 거제도로 건너간 피난 교우들이다. 부친 윤사우尹仕佑는 원래 경북 영일군迎日郡 사람이었는데 동래東萊로 이주해 와서 살았다. 그리고 동래에서 혼인했고 윤봉문을 낳았다. 그는 이곳 교우들과 가까이 지내며 신앙생활을 익혔다. 그러다 병인박해를 만나자 가족과 함께 피신하게 된다.

처음엔 인근 바닷가로 피신했다. 영도와 태종대 주변에서 피난 교우들과 숨어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 1868년 무진박해가 일어나자 거제도로 들어가게 된다. 대마도로 갈 의향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동래에 있으면서 일본인 교우들과 접촉이 있었던 것 같다.

윤봉문의 가족은 언제 거제도로 들어왔을까? 옥포본당 첫 주임이었던 김후상 신부는 그들과 진진부陳進富의 만남을 1879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옥포의 동수(洞首-洞長)였던 진진부는 동부면 구천리九川里에 성묘하러 갔다가 산속 빈집에 살고 있던 그들을 만난다. 미루어 보아 그들은 거제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인연으로 진진부는 영세하게 된다. 1880년 윤사우와 함께 성주星州 먹방이(墨方)로 가서 로베르 신부에게 영세했다고 한다. 로베르 신부가 성주지역 교우촌을 돌면서 판공을 치르고 있을 때 이들이 찾아갔을 것이다. 아마도 윤사우는 육지의 피난 교우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세 후 진진부는 자신의 둘째 딸 순악(順岳 펠리치타스)을 윤봉문에게 시집보낸다. 그렇다면 혼인은 1880년 이후의 일이다. 윤봉문은 1852년에 태어났으니 2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1888년 순교 당시 순교자에게는 자녀가 둘 있었다. 아들 학송(學松 루카, 7세)과 딸 송악(松岳 가타리나, 2세)이다. 

순교자의 외아들 학송은 장승포長承浦 김씨 집안 규수와 혼인했지만 자녀 없이 죽었다. 딸 송악은 거제읍 교우 신부옥辛富玉에게 출가하여 딸 양선(良先 아녜스)을 낳은 뒤 선종했다. 신부옥은 재혼했는데 후처 주씨朱氏 사이에서 신상도(辛相道 프란치스코) 신부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