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말을 알아들으려면

posted May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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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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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에 입회한 지 얼마 안 된 지원자 시절 우리 예비수녀들은 어떤 성가만 나오면 웃음을 터뜨리곤 했는데, 그 가사가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동서남북 방방곡곡 모여온 우리~” 그때 우리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서 마산에 있는 수녀원으로 입회를 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출신 지방에 따라 달라서 못 알아듣기도 하고 재밌다고 웃기도 했습니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를 심하게 사용하면 다른 지방 출신들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함께 모인 곳에서는 말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말을 통해서 소통하고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인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 2장에서는 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서로가 다른 언어들로 말을 하는데도 그 말을 저마다 자신들의 지방 말로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구약성경에 있는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인간들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고, 하느님께서 오히려 인간들이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령께서 오시면서 인간들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자신들의 언어로 듣게 하시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무엇 때문에 같은 말을 사용하는 인간들이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게 하시고 이제 와서는 또 무엇 때문에 서로의 말을 알아듣게 하시는 건지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창세기에서는 서로 같은 말을 사용하는 인간들이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이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즉, 말을 알아듣는 능력을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들의 말로 알아듣게 하시는 것은, 인간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지방 말로 알아듣게 된 그 말은, 그냥 하는 아무 말이 아니라,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하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말이라야 그 말을 듣게 되는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의 내용은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신앙공동체가 해야 할 말은 인간 위주의 탑 쌓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인간 위주의 말들은 공동체 안에서 오해와 갈등을 불러와 불화를 일으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져서 자신 안에 숨으려고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성령을 받기 이전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위업에 관해 말을 할 때에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말을 알아듣습니다. 예수님을 공동체의 중심에 모실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서로의 말을 알아듣게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