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순례

천지 창조

posted Oct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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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영선 루시아 수녀/ 광주가톨릭대학교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천지 창조

 

우리는 아직 첫 번째 순례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름답고 질서 있는 세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남녀가 다스리는 태초의 세상에는 온갖 생물들이 제 종류대로 자랍니다. 오늘날의 용어를 빌리자면 생물학적 종의 다양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원죄도 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를 읽고 나면 우리는 저절로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태초의 세상과 같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실제로 성경의 저자도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이어서 나올 것입니다.

 

첫 번째 순례지를 떠나기 전에 생각해 볼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창조 이야기가 말하는 대로 세상이 6일 만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할까요? 첫 번째 창조 이야기는 역사적인 자료가 아닙니다. 어떤 본문이 역사적인 자료가 되기 위해서는 사실 확인이 가능한 이름이나 사건, 연도를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문에는 그런 자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정말로 세상이 6일 만에 창조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성경의 저자는 이런 식으로 창조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또 이런 이야기를 통하여 창조에 관하여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에는 고대인들이 생각하던 우주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 위에도 물이 있고, 이 하늘 위에 있는 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투명한 궁창이 그것을 받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늘이 파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는 매우 높은 산이 있어서 하늘을 기둥처럼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늘의 궁창에 해와 달, 별들이 매달려 있으며, 궁창의 곳곳에는 창문이 달려 있어서 홍수가 날 때는 이 창문들이 열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창세 7,11 참조). 그리고 땅속 깊은 곳에는 지하 세계가 있어서 사람이 죽으면 그곳으로 간다고 믿었습니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이 각각의 영역을 책임지는 신들이 따로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늘을 관장하는 신, 지하 세계를 관장하는 신, 태양신, 달신, 별신 등 우주의 영역은 그것을 관장하는 신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저자가 이 모든 것이 유일하신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선언한 것은 그 당시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고려할 때 놀라운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의 저자가 해와 달 대신에 큰 빛물체와 작은 빛물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창세 1,16 참조).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해와 달은 매우 중요한 신들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런데 해와 달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큰 빛물체와 작은 빛물체로 언급함으로써 고대 근동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하는 것들이 하느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천문학의 발달로 그 시대의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었던 천문학적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고대인들의 우주관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비과학적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해 버려서도 안 됩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은 저자가 기록한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저자가 선포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태초의 세상은 아름답고 조화로우며 질서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세상의 부조화와 무질서, 아름답지 못한 모든 것들을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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