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떠나는 성지순례

백지사지白紙死址에서

posted Jan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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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민창홍 요한 시인 (시, 글, 사진) / 가톨릭문인회

활짝 열어젖힌 하늘의 문 푸르다
농사일도 끝냈겠다 빛도 쨍쨍하고
창호지 바르기 좋은 날이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문마다 햇살 가득한데

순례자는 눈물이 난다

망나니처럼 볼이 터져라 물 한 웅큼 물고

악마가 되어 얼굴에 뱉으니

문살에 닥나무 종이 하얗게 붙어 팽창하고

코가 막혀 숨을 쉴 수 없다

무엇이 우리의 길 막는가
마당 한가운데 환하게 웃고 있는 나무는

줄지어 서 있는 하느님 바라기

길을 막고 오물을 뱉을 때는
제 몸도 더럽혀졌다는 것 아는가

말문이 막혀 눈을 감고 묵상하는

이 끔찍한 도모지(塗貌紙)의 현장

피가 거꾸로 솟다가

얼굴에 뿌려진 물 성수로 표징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꽃잎 하나

단단한 믿음 뿌리내리는 기적이다

오늘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여산 성지 성당.jpg

여산 숲정이 성지.jpg

 

 

|여산순교성지|

여산성지는 병인박해 2년 후인 1868년 무진년에 많은 천주교인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 성지이다. 또한 여산성당은 여산순교를 기념하여나 바위성당에서 분리되어 1958년 건립되었다.

여산은 기록으로만 보아도 이곳에서 순교하신 분은 25명에 이르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적어도 40여 명이 이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순교자들은 당시 여산군의 속읍지였던 고산, 금잔, 진산 등에 숨어 살다 잡혀온 이들이다. 1983년 전주교구는 믿을만한 구전을 토대로 김성화 야고보 등 여산 순교자 열 분의 유해를 발굴하여 천호성지의 묘역에 안장하였다.

여산의 박해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끔찍하고 혹독했다. 많은 신앙 선조가 여산 감옥과 숲정이, 뒷말, 배다리, 장터, 기금터, 옥터, 백지사터(여산 칠순교지)에서 일정한 형장이나 형벌이 없이 마구잡이로 죽임을 당하였다. 교우들은 매질이나 교수형(絞首 刑), 백지사(白紙死)형 등의 참혹한 죽음으로 순교하였다.

 

천호성지 부활성당.jpg

천호성지 순교자 묘역.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