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이제는 물 흐르듯

posted Jun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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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윤식 에밀리오 수필가

오늘날 물만큼 귀한 존재는 없는 지경이 되었다. 만물이 물로써 이루어졌고 만물을 키우는 것도 물이라고 알려졌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리 잘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한때는 ‘물 무우따’라는 말을 그래도 즐겨 사용한 적이 있었다. ‘끝났다, 낭패 받다’를 상징하는 이 말은 어쩌면 나쁜 의미로 쓰였던 것 같다. ‘빨리빨리’가 우리 행동의 근간이기도 했고 ‘많이많이’가 삶의 대세였기에, ‘물’은 당시 풍조에 역행하는 힘없는 이의 접두어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래서 ‘물 뭈나’라거나 ‘물 티’ 등은 좀 비아냥거리는 투로 쓰이기도 했다. 그 물이 이제는 생명의 근원이다.


사실 물은 서로 간에 잘도 어울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지를 않는다. 온 그대로 밀려간다. 다들 낮은 곳으로만 간다. 어쩌다 깊은 펑퍼짐한 웅덩이에서는 머물다가, 뒤따르는 동지들과 다 찰 때까지 기다렸다간, 다시 무리를 이뤄 더 낮은 곳으로 길을 재촉한다. 그렇게 가다가 또 솟구친 산이 막으면 멀리 돌고 또 돌아서가고, 깨진 바위틈에는 몸을 막 부수며 비집어 빠져나가고, 가파른 계곡에는 숨 가쁘게 뛰고, 덜렁 자빠뜨린 절벽에는 막 뛰어내린다. 그렇게 물은 온갖 것을 다 받아주는 바다로 스며든다. 이렇게 물은 가장 낮은 곳, 그곳으로 나아간다.


낮은 곳, 대다수의 사람이 싫어하는 곳이다. 지금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지만, 느릿느릿한 물이 가는 그곳은, 한때는 비천하고 버림받은 곳, 소외된 이가 억압받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물 무우따’하면 어쩌면 별 볼일 없게 된 것의 상징이기도 했었다. 작은 이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약자가 이제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뿜는다. 소위 서로 연대해 가면서 힘을 곳곳에다 발산한다. 마치 낮은 곳으로만 찾던 그 물이, 오랜 기간 갈고 갈아 짱돌을 까부수듯이 말이다.


이제 세상은 좀 변했다. 우리네 삶도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약자가 소외되지 않고 강자가 그리 설치지도 않는다. 돈깨나 좀 있다고 명함 올리려 아무 직함이나 덜컹 쥐지도 않는다. 순리에 따르는 질서가 곳곳에 자리 잡았다. 소수의 선동가가 펼치는 막장은 다 끝나가고, 다수의 작은 힘이 모인 정의가 봇물 터지듯 솟구친다.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내친다. 이런 개혁의 소용돌이에도 하나의 버팀목은 꼭 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연민의 정이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저 낮은 곳으로 손수 가셨다. 우리도 저 물처럼, 좀 더 낮은 그곳으로 갈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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