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신앙

인간을 위한 순교-김은국의 『순교자』

posted Sep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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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순교자』는 재미작가 김은국의 대표작으로 애초 영어로 발표되었다가 이후에 한국어로 번역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작품이다. 6.25 전쟁 중 평양을 배경으로 비극적 사건을 통해 신앙의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국 전쟁 중 ‘나’ 이 대위는 한 목사와 신 목사라는 사람을 조사하라는 장 대령의 지시를 받는다. 그들은 전쟁 초기 있었던 북한군의 목사 학살 사건에서 14인의 목사 중 살아남은 두 사람이다. 나는 그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두 목사를 찾아가지만 한 목사는 미쳐 있고 신 목사는 끝내 침묵할 뿐이다.


그러던 중 처형 사건에 연루된 북한군 소좌를 체포하게 된다. 그로부터 알게 된 진실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목사들의 대부분이 서로 배신하고 살려 달라고 개처럼 빌빌댔으며 하느님의 이름을 모욕하여 죽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상황이 바뀌어 두 목사는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장 대령은 그 진실을 외면하고자 한다. 북한군의 만행을 선전하기 위해서 12명의 목사는 영광스러운 순교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진실을 두고 인물들의 생각이 얽히며 작품은 참된 신앙의 의미를 묻기 시작한다. 


처형된 목사 중 박 목사가 있었다. 그는 나의 친구인 박 대위의 아버지이다. 박 목사는 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늘의 세계만 바라보는 ‘광신도’였다. 그런 아버지와 교감하지 못하였던 박 대위는 나에게 말한다. “내가 알고 싶은 건 하나뿐이야. 죽음을 앞둔 그 최후의 순간에 그가 결국 나하고 나누어 가질 만한 어떤 공통된 그 무엇을 보여주었느냐 하는 것 말일세.”


그리고 마지막 순간 참혹한 인간 세계를 목격한 박 목사는 처형의 순간 “난 기도할 수 없어!”라며 기도를 거부하고 만다. 고통 속에 인간을 버려두는 신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중에는 죽어가는 자들이 신음하며 다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을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느니라. -「욥기」 24장 12절


어느 날 신 목사는 교회에 나타난다. 그는 군중 앞에서 스스로 배신자라 고백하며 12명의 목사들이 회유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키며 죽어 갔다고 증언한다. 그러자 군중들은 ‘순교자’들을 찬양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애초에 그는 목사들의 죽음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였고 이번에는 그들의 죽음을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다. 종교의 위엄을 위해서도 아니고 장 대령처럼 북한군의 만행을 선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고통받고 지친 대중들에게 위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기꺼이 죄의 십자가를 지기로 한 것이다. 


“날 좀 도와주시오, 불쌍한 내 교인들, 전쟁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 그리고 삶의 피곤에 시달리는 이들을 내가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시오.”


아름다운 죄라는 역설적인 말이 있다. 신 목사가 그랬다. 고통받는 타인을 위해 스스로 죄에 몸을 던지는 것-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고귀한 순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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