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영성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진짜일까? : 그리스도인의 영적 동굴

posted Sep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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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재찬 안셀모 신부/ 분도 명상의 집

|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진짜일까? : 그리스도인의 영적 동굴

 

 

이 세상살이도 죽음 앞에 아무것도 아닌데 왜 이리 아등바등 사는지 모르겠어요.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셨다고 하는데 세상은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진짜 영적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기에 지하 동굴이 있다. 동굴 속에는 죄수가 갇혀 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두 팔과 두 다리가 묶인 채로 동굴 벽만 보고 산다…. 죄수의 등 뒤 위쪽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죄수는 횃불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만을 보고 산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 첫 대목이다. 동굴에 사는 속박된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이데아Idea의 ‘그림자’이지만, 그들은 그것이 진짜라고 믿고 있다. 플라톤은 세상 만물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고 동굴 밖에 진짜가 존재하며 인간은 그 실체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에 갇혀 있는 죄수는 바로 우리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듯이 우리 모두가 과연 동굴에 갇혀 허상만을 쫓고 있는 죄인들일까? 눈에 보이는 현상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할까? 동굴 밖에만 참된 세상이 존재하는 걸까? 하느님께서는 왜 이 그림자 같은 세상에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을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동굴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서방 수도승의 아버지, 베네딕토 성인은 이탈리아 수비야코 동굴에서 3년 동안 은둔생활을 한 후,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이탈리아 라 베르나 동굴에서 홀로 기도와 고행을 하던 중 “예수님의 오상”을 받게 되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군인으로서의 삶을 뒤로하고 스페인 만레사의 동굴에서 수개월 동안 극도의 고행과 기도를 한 후, 온전히 변화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들은 왜 동굴로 갔고, 동굴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동굴은 자신이 과거 추구하고자 했던 세속이라는 그림자를 버리고 하느님을 찾는 생활을 하는 상징적 장소이다. 동굴 속에서 고행과 기도를 하는 동안 그들은 내적 공허, 낙담, 지루함, 영혼의 무감각, 절망, 우울, 세속의 유혹 등으로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며 거짓 자아와 투쟁한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의 은총을 받기 위한 준비와 정화를 위해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동굴에서 그 모든 힘겨움을 견디어 낸다. 그리고 영적인 재탄생은 선물로 주어진다. 


이러한 성인들의 영적 동굴과 플라톤의 동굴은 “깨어나거나 자각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유사하다. 세속의 허영과 그림자를 쫓으면서도 그것이 진짜라고 여기던 성인들은 동굴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세속이라는 그림자의 동굴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그들은 자신이 그림자의 동굴 속에 살아왔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 동굴 밖으로 나와 새로운 참된 세상을 볼 수 있기 위해서 영적 동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그들에게 동굴은 실제로 동굴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내면의 동굴이요, 동굴 밖 세상 속에서 참된 실체인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준비를 위한 정화의 동굴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면에서 만난 하느님은 이데아처럼 도달하기 힘든 이상理想으로 저 멀리 있는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 만날 수 있는 하느님, 모든 것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이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영적 동굴은 과거에 자신이 그림자만을 보아 왔던 그 세상이 바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임을 깨닫게 해 주는 곳이다. 동굴로 들어가기 전에는 그림자들이 진짜라고 믿었기에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상 속에서 제대로 실체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정화의 동굴을 거친 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참된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허상의 그림자를 쫓으며 분주하게 세속의 동굴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스스로를 자신만의 동굴 속에 가두고 단절과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내면의 동굴로 들어가도록 하자. 그곳에서 고요히 자신을 바라보며 어둠 속에서 참된 빛을 기다리자. 주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 위해 영적 동굴 안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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