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순종하는 삶

posted Jan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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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순화 베로니카 시인/ 가톨릭문인회

건강 검진 결과 유방암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초음파 사진을 보여 주면서 모양이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한 나에게 너무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병원 문을 나오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상담 심리 학위를 받기 위해 지난 1년은 거의 밤을 세우듯 보냈던 시간이었기에,

스스로도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바로 암 선고라니 너무 절망스러웠다.

 

성당에 앉아서 지금은 너무 이른 거 아니냐고, 이번 한 번만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렇게 3일을 울었다.

4일째 되던 날 마음이 조금은 담대해졌다.

주변의 기도가 나를 살리는 듯도 했다.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유방암으로 진단이 된 초음파 사진들을 인터넷으로 보다가,

내 상황과 유사하여 어쩌면 내가 받아들여야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일째 되던 날에는 내가 진짜 암이라면 잘 치료 받자는 생각으로 더 담대해졌다.

그러면서도 잠자기 전에는 자꾸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8일째에는 예전에 천주교 자살 예방 센터에 상담 자원 봉사를 신청해 놓았는데 담당 수녀님과 연락이 닿아 도움을 드리기로 했다.

9일째 되던 날 미사 시간에 나는 뜻밖의 체험을 했다.

예수님의 왼쪽 가슴에 금빛의 혹 모양이 확연하게 보였다.

떨렸다.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내가 아픈 위치와 똑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나는 올해 회개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매일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

그런데 늘 성당에 가면서도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게 이 시점에 보인 것이 신기했고,

마치 주님께서 나의 슬픔을 다 아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만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11일째 되던 날 드디어 조직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다행히도 결과는 양성 종양이었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정말 감사해서 다시 눈물이 났다.

다시 삶의 기회를 허락해 주신 주님께 너무 감사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먼저 매일 나를 위해 특별히 기도해 주셨던 스승님께 감사했고,

조직 검사 결과를 듣던 날 새로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고 케이크를 선물해 준 동료 선생님에게 고마웠다.

동료 선생님은 아마도 내가 매일 미사를 참여했던 시간들이 나를 치유해 주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는데 깨달음을 얻은 듯 눈물이 났다.

매일 새벽과 저녁에 성당에 갔던 시간들은 그저 내가 나의 죄를 씻고자 갔던 거였는데,

주님은 나의 병에 대한 치유를 해주시고 계셨던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 내가 체험한 성령의 느낌은 매우 강렬했고, 그 어느 때보다 모든 게 또렷해졌다.

주님은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나를 남기셨고, 어쩌면 그것이 상담자로서 이제 당신의 일을 시작하라는 신호 같았다.

이제 나는 주님께서 부족한 나를 통해 하시려는 일을 잘 완수하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내가 가야할 때가 오면 그때는 목숨을 갈구하지 않고, 기쁘게 따라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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