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일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젬마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제 편이 생겨 든든했습니다. 친구들은 대부분 불교 신앙에 가까운 편이라 절에는 함께 다녔어도 성당에는 다닌 적이 없기에 외로운 신앙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젬마가 저도 모르게 천주교인이 되었다니 얼마나 기뻤던지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말씀도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은 우리나라에 있는 성지를 둘러보자고 암묵적인 약속을 했더랍니다. 그래서 어딘가로 가고 싶다고 하면 근처 성지부터 조금은 먼 성지까지도 알아보곤 했죠. 이번에는 ‘진목정성지’를 택했습니다.
성지를 향해 가면서도 성지나 기도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세속적인 이야기에 심취해 성을 냈다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가 하면서 즐거운 성지 순례길이라 자부하며 갔었죠.
도착해서 성전에 들러 각자 기도를 올리고 난 후, 감히 예수님 앞에서 다시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하하 호호’ 떠들었습니다. 성전을 나올 때쯤 반성이 되더군요. ‘이런 수양이 덜 된 사람이라도 사랑 많으신 주님께서는 용서하실 걸~’이라며 합리화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 기념성당을 나와 둘러보던 중 범굴 묵상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터라 굴속이라는 생각에 폐소공포증이 생길 것 같다는 마음으로 들어섰지요. 약간은 구불거리는 그런 굴속을, 무서움을 안고 지나는데 뭔가에 소스라치게 놀라 고함을 질렀습니다. 옆에 있던 젬마도 덩달아 놀라 제 팔을 잡았는데 저는 계속 고함을 치며 젬마의 팔까지 뿌리치고 혼자 도망치듯 문을 찾아 나왔습니다. 바깥의 환한 빛 속으로 뛰어나오자마자 겨우 안정을 되찾는데 젬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는 말에 어리둥절했습니다. 겁에 질려 제가 젬마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만 살겠다는 식으로 도망 나왔던 것이죠. 아뿔싸! 저는 참 신앙인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느냐?”
이 범굴 묵상소는 순교자들이 숨어서 하느님과 대화하고 미사를 올리며 서로의 신앙을 돈독히 하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단지 동굴로만 보아 무서웠습니다. 하느님을 뵙지 못할까봐 두려워했던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지요. 젬마에게도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친구는 만약 위험한 일에 부딪혔다면 둘이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데 저는 혼자 살자고 뛰는 모습을 보고 실망과 분노까지 느꼈다고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선 겉으로만 그런 척, 주님을 믿는 척했던 것이어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다시 마음을 추슬러 범굴로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젬마와 꼭 붙어서요. 이곳은 순교자분들이 하느님과 대화하던 숭고한 장소인데 저 같은 게 왜 속된 판단으로 무섭다고 생각했을까요? 참 부끄러운 인간입니다. 아직도 초보 신앙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