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음식 쓰레기통 속에서 가끔 멀쩡한 식재료를 발견할 때가 있다. 물론 겉보기엔 멀쩡해도 반대쪽이 상했거나 먹을 수 없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멀쩡해 보이는 음식을 보는 순간 ‘아까워라’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떨 땐 쓰레기통 속에 그런 먹거리가 들어 있고 그 주위를 고양이가 지나며 먹이를 찾아다니는, 아 이러니를 목격하기도 한다.
“우리가 먹는 것들은 모두 생명입니다. 우리는 그 생명들을 죽여서 먹는 것이죠”라고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가 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 모두가 태초에 하느님께서 만드신 생명체다. 나를 수십 년 동안 먹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식물이 희생되었을지 생각해 보 았다. 계산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치일 것이다. 내 육체를 지탱해주며 사라진 생명체의 수와 음식으 로 삼켜버린 그 많은 양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아픈 현실이지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남의 생명을 희생 시키는 것이 생물학적 삶의 방식이다. 생태계의 섭리이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음식의 용도로 죽임을 당하고 도 쓰레기가 되어버린 생명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에게 딱 필요한 만큼, 혹은 적당한 모자람이 가 장 좋은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식탐과 욕망이 많은 나부터 실천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냥 버려 지는 먹거리가 최소한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여 년 전에 읽은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이 떠오른다. 이 책에는 자연치료법 의사가 호주 원주민 부족과 함께 호주 대륙을 횡단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부족은 먼 길을 이동할 때 어떤 교통수단도 이용하지 않았으며, 꼭 필요한 만큼의 먹거리만 구해서 먹었다. 최소한의 사냥을 하였고, 식사 전에는 먹거리가 된 생명체에게 위로 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아주 작은 뼈다귀까지, 바늘을 만들든지 도구로 쓰며 먹기 위해 죽인 생명체 를 최대한 버리는 일이 없게 하였다. 조상 대대로 그런 삶을 이어온 원주민들의 눈에는 문명인들의 생활이 아 주 이상하게 비쳤을 것이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문명인들을 ‘무탄트(돌연변이)’라고 불렀다. ‘무탄트’는 인간 본래 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라는 뜻이라 한다.
먹거리로 희생된 생명들에게 호주 원주민들이 위로와 감사를 전할 때, 그들은 사냥감을 보내준 영적 존재 에게도 경배를 드렸다. 마치 우리의 식사 전후 기도와 비슷하지만 그들의 기도에 비해 우리의 기도는 간절함과 진정성이 떨어질 것이다. 우리가 풍요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자연적 시각으로 볼 때 돌연변이가 되어버린 우리는 편리함과 물적 풍요를 어디까지 이루어야 만족하게 될까. 세계보건기구는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인 건강을 지표로 삼는다고 한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균형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무탄트(돌연 변이)로 살아오는 동안 물질적 풍요와 수명장수라는 것을 이뤄냈으나 정신적·영적으로 피폐해졌고 기후 위기까 지 초래하고 말았다. 지금 나는, 그리고 우리는 본래의 모습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와 버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