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나의 모교가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동창회에서 그 역사를 책으로 묶어내자고 한다.
특별한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책을 펴내려고 이것저것 자료를 찾다가 뜻밖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진주 정신의 모태가 되는 커다란 사건의 인과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진란에 관계한 남명의 제자들과 논개의 결행, 진주농민항쟁, 형평운동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를....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는 살 수 없다하여 독립 운동을 하고, 민족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이민족과의 전투에 목숨을 걸었고,
정치의 부패와 관료의 부 당한 수탈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기에 온몸을 던져 항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이에 천년 동안 남강 과 함께 흘러온 유구한 역사의 면면을 새롭게 하려면 교육이 최우선이라
지역 주민들이 모금을 하여 민립고 등여학교를 세운 거였다. 놀라웠다.
우리가 명문이라고 자찬하는 이 학교의 입학 조건은 일정액의 월사금을 내야 하고 소학교 졸업 학력을 갖추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고
신분 또한 양가집 규수여야 했다.
진주 특징의 하나였을까 기생집 여아는 입학을 불허한다는 권고가 덧붙어 있었다.
물론 백정의 자녀도 차별에 시달려 야 했다. 진주정신이라 함은 위에 열거한 모든 부당함과 억울함과 분노의 응집이 낳은 결과였다.
이런 역사의 와중에 가장 끈질기고 세속적으로 비참한 사건들은 따로 있었으니 천주교 박해였다.
영세 초기 나는 복 받기를 바랐고 가족 안에서 무탈하게 평범한 주부로 살고자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 록 가톨릭교리를 잘 이해했다기보다 그 신앙 선조들이 본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커 갔다.
그들이라 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 아깝지 않았을까?
그러나 박해, 순교사를 보면 물론 배교자도 많지만 성인 복자 가 경자들은 너무나 의연하더란 것이다.
나약해 빠진 오늘날 우리들과의 궁극의 차이는 무엇일까? 샤를르 달레 의 『한국천주교회사』에 적혀있다.*
“내포지방 홍주 황일광 시몬은 백정의 집안에 태어났는데, 조선에서는 이 계급을 어찌나 멸시를 하고 천 대를 하는지 거기 속하는 사람들은 종들보다도 더 낮게 다뤄지는 지경이다.
그들은 인류 밖에 있는 품위를 잃은 존재로 다뤄진다. 동네에서 떨어져 따로 살아야 하며 아무하고도 일상생활의 교제를 할 수 없다”
천주교의 평등사상은 그들에게 사회의 복음이었다.
그는 자기에게는 두 개의 천당이 있는데, 하나는 이 세 상에서 인간대접을 받았으므로 천당이고, 하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이라고 하였다.
전쟁도 잠시 멈추었고 국 민소득도 높고 백정 차별도 없고 천주교 신자라고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오늘날 한국사회. 국민 절반이 울분 상태라고 한다.
하루 평균 자살자 수가 37.7명에 이르는 이 경쟁 사회에 내가 이 사회를 지옥으로 만드는 데 전연 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님 마음으로라도 우리는 과연 천당을 살고 있는가?
*박해시대 숨겨진 이야기들 2/순교의 맥/2016/서양자수녀 p130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