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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10:44

불편함을 끌어안고-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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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자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돈이 너무 많으면은, 아무리 뭘 사고 먹고 마셔도, 결국 다 시시해져 버려.
언제부터인가 내 고객들이 하나둘씩 나한테 그러는 거야.
살면서 더 이상, 즐거운 게 없다고. 
그래서 다들 모여서, 고민을 좀 해 봤지. 뭘 하면은 좀, 재미가 있을까. -드라마, 오징어 게임, 9화

 
편함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편함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래희망이나 소원을 물어볼 때, 안정된 직업이나 건물주를 말하는 것은 걱정 없는 편한 인생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안주’하려는, 곧 현재의 처지나 상태에만 만족하며 ‘더 나아가지 않으려는’ 태도, 또는 삶에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되기도 합니다. 아니면 예상치 못한 상황, 권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미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많은 가족과 안정된 상황 속에서 편안한 여생을 누릴 수 있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는 떠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삶의 풍요를 누리던 욥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도록 사탄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법한 불편한 도전과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과 욥은 새롭게, 차원 높은 삶과 신앙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불편한 고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거짓말로 부모와 선생과 가정교사를 속인 것이 결국 놀고 싶고, 되잖은 구경이 하고 싶고, 애바르게 그따위를 본뜨고 싶어서가 아니었나이까? 더구나 나는 부모의 식량고방과 식탁에서 훔쳐내기까지 했습니다. 탐식이 시키기도 했거니와 아이들에게 줄 것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아구스띤, 고백록, 최민순 역, 제1권, 제19장


나는 당신을 저버리고는 욕정의 충동을 따라 몸이 닳아서 당신 계명을 어기며, 당신의 채찍을 피하지 못하였사오니, 사람이면 누가 이를 피할 수 있으오리까. 제2권, 제2장


그 열여섯 살 나던 해, 정욕의 가시덤불이 내 머리에 뻗어 올랐어도 뽑아줄 손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2권, 제3장


나는 그 도둑질을 하려 들었고, 사실 범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어쩔 수 없는 군색에서가 아니오라, 정의가 없고 싫고, 불의에 배불러서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가진 것이 넉넉하고, 남의 것보다 훨씬 나았건만 이를 도둑질하기는 훔친 물건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도둑질 자체 그 죄악이 좋아서였기 때문입니다. -제2권, 제4장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젖어드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죄의 역사를 낱낱이 다 열어 보일 뿐 아니라, 그 죄 많은 삶 안에서 자신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 사랑을 눈물로 고백한다. 이처럼 진솔하게 내면화된 ‘사랑’의 체험을 들려주는 교부나 저술가는 일찍이 없었다. 단순한 자서전이나 회고록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죄의 고백을 넘어서서 아우구스티누스 개인이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죄의 역사는 곧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역사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고백’이란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이며,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을 뜻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서간 강해」 (교부문헌총서)의 ‘해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이 유명한 것은, 그가 뛰어난 신학을 펼쳤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위대한 성인으로만 알려질 수도 있는 인물이, 성인답지 못한(?) 부끄러운 과거와 죄상을 낱낱이 스스로 폭로했기에, 그런 힘든 과정을 통해 자신이 성장했음을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무릅쓰고’ ‘고백’했기에, 유명한 것입니다. 성인은 그저 좌충우돌하며 죄만 지은 게 아닙니다. 스스로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을 얻기 위해 끈질기게 탐구하고 모색했기에 하느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었으며, 이 고백의 과정 또한 자신의 죄에 대한 힘든 고백이자 동시에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적인 고백이 되었습니다. 


고해성사, 불편함으로 치유와 화해를
모든 신자는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은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하여야 한다. 이 영성체는 원칙적으로 부활 시기에 이행되어야 한다(교회법 제920, 989조 참조)… 부활 판공성사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위의 시기에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판공 때나 다른 때에라도 받아야 한다(교회법 제989조 참조).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 제90조 1항, 2항


고해성사는 참 불편합니다. 잘못을 ‘내 탓’이라고 인정하기도 불편하고, 그런 인정하기 싫고 밝히기 싫은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는 것도 불편합니다. 


고해성사는 사제들에게도 불편합니다. 남의 죄를 듣는 것도 불편하고, 특히 판공성사 때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불편한 자세로 고해를 듣고 또 머리를 쥐어짜내 훈화를 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입니다. (고된 일을 일상적으로 하시는 분들 앞에서, 사제들이 고작 두어 시간 성사 주는 것을 힘든 일이라고 표현해서 죄송합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의무와 권리로 만나는 관계에는 가족관계 자체에서 오는 불편과 화해의 과정이 없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편리 추구의 이데올로기에 안주하는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이런 인간관계는 최고의 행복을 실현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불편이 없이는 만족이 없고 만족이 없으면 행복이 없다는 고락상생苦樂相生의 원칙에서 보면 불편이 없는 삶은 불행한 삶이다.
-박승희, 사회복지와 가족부양 사이의 딜레마, 「지식의 최전선」, 한길사


고해성사가 불편한 진짜 이유는 의무감으로, 형식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내 탓이라 인정하면서 내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는 것이 불편해서, 최대한으로 일반적인 죄만 찾아서 가급적 나를 모르는 사제에게 고백하면 덜 불편합니다. 그런데 성사의 알맹이가 빠져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나는 오히려 더 불편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고해하고 싶지 않아집니다. 


참으로 ‘신자’인 분들은 진짜 ‘성사’를 보기 원합니다. 해치우는 위僞성사가 아닌, 치유와 화해의 성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법 규정에 따라 딱, 고만큼만 해내는 성사는, 합법적이지만 편법입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사람을 율법의 노예 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한국 교회의 특별한 관행인 판공성사 제도가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형식화, 의무화되어가는 상황이 신자들과 사제들로 하여금 점점 더 고해성사를 꺼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불편함을 안고 나를 열고 사제와,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소통할 때, 성사는 하느님 은총의 온전한 통로가 됩니다. 


은총의 시기를, ‘은총’으로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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