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5.01.23 13:20

전주 전동성당에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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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월춘 프란치스코 시인 / 가톨릭문인회

바빠서, 마음에 들지 않는게 많아서, 비교적 늦게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된 탓이라고 변명하지만, 사실은 믿음이 신실치 못해서 냉담 중인 제 자신을 꾸짖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유아 영세를 받았고, 지금도 성실하게 하느님의 품에서 살고 있으니, 곧 저도 그럴 것이라 스스로 다독입니다만, 우리 마산교구가톨릭문인회에서 주최하는 성지순례나 피정에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어 송구스럽습니다. 평소 존경하는, 지금은 은퇴하신 허 신부님 말씀처럼 제가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고 있으므로, 곧 흐트러진 마음을 회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계획에도 없었던 전주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품격 있는 미식 도시로 알려진 전주는 육회비빔밥이나 막걸리 등이 유명하지만, 한옥마을 입구에 있는 전동성당을 빼놓을 수 없지요. 먼저 들러보고 싶었습니다.

 

한옥마을 입구 바로 오른쪽에 전라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전동성당殿洞聖堂’이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 두 사람은 제사를 우상숭배로 선언한 교황청의 입장에 따라 윤지충 모친의 장례식을 천주교식으로 치르면서 유교식 사회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전주성 밖 전동성당 자리에서 참형을 당했습니다(신해박해). 순교자들의 피묻은 돌 위에 세워진 성지, 저는 오래전에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를 참배하면서 시를 한 편 남긴 적 있는데, 다시 한 번 순교자들의 피와 희생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의 동상 앞에서 잠시 묵상기도를 하였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의 피가 묻은 돌 위에 세워진 전동성당, 순교자들의 피가 스며든 돌을 사용하여 그들의 희생을 딛고 일어선 성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두 사람이 참형을 당한 날로부터 100년이 지난 1891년, 프랑스인 보두네 Baudounet신부가 이 땅을 사들여 성당을 지었고. 성당의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을 완공한 경험이 있는 프와넬 Poisnel신부가 맡았는데, 당시 전주성을 허물던 시기였기 때문에 전주성에서 나온 흙으로 벽돌을 굽고, 성벽에서 나온 돌로 주춧돌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동성당 입구와 마당에는 평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좀 언짢았으나 생각을 달리했지요. 순교자들이나 성당을 세운 분들이나, 이곳에서 고통의 역사를 느끼기보다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되찾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성당을 나와 길 건너 골목에 있는 고풍스러운 찻집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황차를 마시며 양갱을 먹었습니다. 저녁에는 막걸리 골목으로 갈 예정이라 서둘러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지만, 그래도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던 까닭은 이 땅의 아픈 역사 때문이겠지요.

전동성당.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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