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를 통해 무의식의 정화가 일어나면 그러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넘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타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곧 보상입니다.(사랑은 사랑이 보상입니다) 그러므로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하고도 보상은 커녕 누군가가 알아주지도 않고 칭찬의 말조차 없어도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기쁨 : 기뻐해야 할 일이 없어도 샘솟는 기쁨으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면서 느끼게 됩 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뻐해야 할 일, 이를테면 잃었던 건강을 되찾았거나 누구 에게 칭찬을 들었거나 시험에 합격했을 때 기뻐하지만 관상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느님 현존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기쁨의 삶을 살아갑니다.
성체조배를 열심히 하시는 어느 자매님이 하루는 성체조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 초면에 죄송합니다만 좋은 일이 있으세요?”라고 묻더랍니다.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아주머니 얼굴이 너무 밝고 편안해 보여서 무슨 좋은 일이 있나 싶어서 물어 보았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자매님이 성체조배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다가 왔기에 그 기쁨이 만면에 드러난 것이지요.
평화 : 세상 풍파 속에서도 유지되는 평화로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힘(무력)이나 권력에 의해 유지되는 평화로 그것이 없으면 평화는 깨어집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로 주어지는 평화는 세상의 그 무엇에 의존해서 얻어지는 평화가 아니라 세상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 인해 주어지는 평화이기에 재물이나 다른 사람과의 갈등과 같은, 그 어떤 것도 그 평화를 깨트리지 못 합니다.
인내 :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고 하느님이 주시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야고 4,14-15)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 특히 힘이 있거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세상일을 처리하며 모든 것의 중심이 자신인 양 여깁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되 그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묵묵히 참고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