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3.09.21 09:31

첫째가 된 행복한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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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

230924 성혈흠숭수녀회 백그라운드(홈피용).jpg

 

저는 품팔이꾼, 현대적 언어로 말하자면 일용직 근로자입니다. 새벽에 일거리 시장에 나가서 일자리를 줄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오늘은 운이 좋아서 일찍부터 선택을 받았습니다. 뙤약볕 속에 일하고 있는데 때때로 다른 일꾼들이 더 오곤 했습니다. 일이 거의 끝날 무렵에도 새로운 일꾼이 더 왔습니다. 밀린 일을 처리하려는 주인님의 뜻이 있는가 봅니다. 


저녁이 되어 품삯을 받으러 모여있었습니다. 가장 나중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며, 후하신 주인님께서 저에게는 더 많이 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기다리던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주인님을 향해 내민 저의 손안에 쥐어진 것은 한 데나리온뿐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일한 저에게 훨씬 늦게 온 다른 이들과 똑같은 품삯을 주시다니,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불평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그러나 주인님께서는 저에게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라고 하시며 심하게 나무라셨습니다. 첫째로 온 제가 어찌하여 꼴찌가 되어야 합니까? 그리고 꼴찌로 온 그가 어찌하여 첫째가 되는 것입니까? 


이날 들었던 주인님의 나무람은 잊혀지지 않아서 가슴속에 새겨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거리 시장을 나갔는데 저를 불러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거리를 기다리며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이러다 품삯을 못 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과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저녁이 다 되었을 때 그 포도밭 주인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데려가 일을 시키신 후, 겨우 한 시간 일한 저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셨습니다.


어찌하여 제게 이렇듯 후하게 주시는 건지… 저는 그분 앞에 감사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거리를 기다리며 서성거리던 저의 애타는 수고로움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 눈가가 젖어 들었습니다. 주인님을 향한 저의 감사하는 마음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절절해져서 이제 저는 감히 첫째가 되었습니다. 주인님을 향한 감사함으로 저는 첫째가 되었습니다! 


첫째로 일찍 일하러 왔던 그날에 제가 꼴찌였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합니다. 제게는 감사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고, 더 받지 못해 화가 나 있었습니다. 더구나 주인님의 후한 처사를 받았던 이들을 향한 저의 시기심은 한 데나리온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마저 없애버렸습니다.


저는 아직도 포도원의 일용직 일꾼입니다. 이제 저는 품삯으로 얼마를 받을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받을 품삯은 늘 똑같이 하루 한 데나리온입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기울여 성실하게 일하려 합니다. 일이 주어지지 않아 일거리 시장에 진 종일 서서 기다릴 때의 불안과 걱정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을뿐더러, 제가 감사하며 사랑하는 주인님이 계시는 포도밭에서 일하다니 행복할 뿐입니다.


행복한 제게 소문이 들려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자신들이 받아야 할 보상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다가 제가 받았던 것과 똑같은 나무람을 호되게 들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그 제자들이 누가 더 높은지를 따지다가 또 그와 같은 나무람을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자신이 받아야 할 품삯을 따져보고, 스승을 따르면 받게 될 보상에 관심을 갖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고, 다른 이들에게 후하거나 너그럽지 못한 채 시기와 불의를 일삼는다면 분명히 이런 나무람을 듣게 될 것입니다.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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