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08.31 12:01

나의 단짝 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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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말순 베아따 수필가

4년 전 딸아이가 갈색 푸들 강아지를 분양받아왔다. 두 달 겨우 넘긴 앳된 강아지 이름을 딸아이는 ‘꼬미’라고 지었다. 딸아이는 바쁘다며 자연스레 강아지의 뒤치다꺼리를 내게 맡겼다. 그 당시에 우리 가족은 대화가 별로 없었고 때로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던 때였다. 꼬미가 오면서 그전엔 필요한 말만 하다가 대화가 많아졌다. 가족이 꼬미를 데리고 함께 산책을 하고, 꼬미의 뽀글뽀글 갈색 머리털을 마음껏 쓰다듬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청량제가 되었다. 때로는 말썽을 부려 때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순수함이 가득한 새까만 눈의 꼬미가 재롱을 부리면 무장해제가 되어 가벼운 주의만 주고 말았다.


2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나에게 큰 병이 찾아왔다. 병의 치료를 위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힘겨운 일상을 지내야만 했다. 그땐 하느님도 성모님도 내게 멀게만 느껴졌고 성당의 교우들과 지인들의 기도도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의욕과 기력을 잃고 우울하게 절망의 나락에 빠져있을 때, 꼬미는 근심 걱정을 비워낸 해맑은 얼굴로 애정 가득히 나를 바라봐 주었다. 그러면 나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이 한 뼘씩 열리곤 했다. 내가 좌절과 공허함이 있었을 때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으로도 바꾸어 주었다. 꼬미는 다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병원 치료가 끝나고 회복하려고 집 앞 공원에서 걷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걷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체력이 허약해져 있다 보니 내가 걷다가 수시로 멈추면, 꼬미도 걸음을 같이 멈추면서 귀를 쫑긋이 세워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면 다시 힘을 내서 걷곤 해서, 일여 년이 지난 지금은 한 번에 쉬지 않고 한 시간 정도를 걸을 수 있다. 꼬미가 일상에서 제일 기특하고 대견한 일을 할 때가 있는데, 내가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면 어디선가 쪼르르 달려와 기도가 끝날 때까지 앉아있다. 아니 내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기도한다.


한 송이 꽃은 남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오직 꽃이기만 하면 된다. 명상가인 틱낫한이 지은 『마음을 멈추고 다만 바라보라』에 나오는 말이다. 꽃을 보며 평화와 치유의 힘을 느끼듯 나도 꼬미를 포근하게 안으면 온몸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제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그 어떤 힘듦 속에 놓여있더라도 불행하지 않다고 느낀다. 나의 단짝 꼬미는 주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다. 만물을 관장하시는 주님께서는 비록 동물이지만 더불어 동반한다는 것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게 해 주시는 것 같았다. 영국의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양>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린양이여, 하느님이 너를 축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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