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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종두 요한 신부/ 교구 이주사목센터장

인종차별人種差別 또는 인종주의人種主義는 인종 집단에 따라 행동 특성의 차이나 우열이 존재한다는 신념을 뜻한다. 흔히 특정 인종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배타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서구세계에서는 불과 수십 년 전까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고, 믿을 수 있는 진리처럼 여겨졌다. 백인과 흑인의 차이를 둔 미국의 ‘짐크로우’법은 1965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법은 1995년에서야 비로소 소멸하였다. 인종주의는 일본에서도 신봉되었는데, 1903년 오사카 내국 권업박람회 때 조선인 등 7개 민족을 전시했고, 1907년 도쿄 권업박람회에서도 조선인 두 명을 전시하고, 2차 대전 당시 발행된 ‘야마토 민족을 중핵으로 하는 세계정책의 검토’라는 보고서에서 일본인을 다른 동양 인종보다 우월한 인종이라고 드러내고 있다. 과학적 인종주의에 근거한 이런 차별은 2차 대전 이후 과학적 연구 절차를 거쳐 기존의 인종주의적 주장이 모두 부정되었고, 이 단어의 의미는 과학적으로는 이미 소멸한 상태이다. 즉, 과학적으로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이 정서적으로도 해소된 것일까? 
10여 년 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의 어느 수업에서의 일이다. 신학생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로 이루어진 한 수업 시간에 ‘흑인’을 보면 일어나는 감정에 대한 나눔을 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거의 모두가 실제로 흑인을 개인적으로 접촉해 보지도 않았는데, 이미 그들의 뇌는 자동적으로 검은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더럽다!” “무섭다!”를 넘어서 “두렵다!”라는 표현으로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 채, 그저 ‘검다’는 단어 하나에 모두들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사랑해야 하는 모두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난 존재임을 머릿속으로 다 알고는 있으나, 실제로 몸이 하는 반응은 여전히 반대편에 서있는 현실을 마주하며 스스로 놀라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결혼 이주한 여성들이 한국식 이름으로 개명한 이유가 본명을 사용할 때 자녀들이나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을 피하기 위한 1차적 방법이라 하니, 우리 사회의 정서적 차별의 정도를 가늠해 본다.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인데, 차별을 피하기 위해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정서적 인종주의’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현주소에 마음이 아플 따름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민족에 대한 혐오가 각 나라에서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여러 형태로 대두되었지 않았던가?


피부색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이주민’은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역사적 사실이든, 왜곡된 사실이든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서 속에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을 지니고 배타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들의 시선과는 별개로, 더 나은 삶을 향해 약속된 땅을 향하여 걸어갔던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힘겹지만 고향을 떠나 편견과 차별을 어깨에 짊어지고, 희생과 사랑으로 그 무거움을 감내하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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