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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종두 요한 신부/ 교구 이주사목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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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필리핀 공동체 미사 후에 낡은 백팩을 메고 허름한 운동화를 신은 50대 중반의 한 남성을 만난 적이 있다. 미사를 마치고 서둘러 떠나려는 그분을 불러 세워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한잔 나누자고 초대하였다. “다른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야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서두르시는지?” 하고 물으니 ‘미등록 외국인 합동단속’ 기간이라 미사만 참여하고 집으로 가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때로는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미사에 참석하는 저를 잡혀가게 하시겠냐는 믿음으로 성전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고 웃으며 이야기하였다. 


얼마나 많은 미등록외국인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걸까? 신분이 불안정한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항상 불안해하면서 왜 굳이 고향을 떠나 여기서 살고자 하는 것일까? 등등 여러 가지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메우기 시작하였다. 먼저 통계자료를 찾아보고 관련 기사들도 훑었다. 


국내에 거주하는 미등록외국인이 현재 41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약 2천만 명의 미등록외국인이 거주하는 미국, 인도, 러시아 등에 이어 세계 8번째로 미등록외국인 많은 나라로 전 세계 통계치는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미등록외국인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국내 노동인구의 변화 및 외국인들의 국내 유입 선호 등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이런 결과치를 놓고 법무부장관은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엄정하고, 집중적인 단속을 통해 체류질서 확립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 밝혔다. 정부합동단속을 정례화(분기별 1회)하고, 외국인 밀집 지역에 대한 점검 및 순찰을 강화할 것이라 발표했다. 이에 지난 2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2개월간 집중단속을 실시한다고 발표하고, 얼마 전에는 3월 2일부터 4월 30일까지로 집중단속 기간을 수정하여 실질적으로 3개월간의 집중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분기를 3개월로 나누는데 분기별 1차례 단속을 정례화하며, 1회차당 3개월간의 집중단속을 한다는 것은 1년 내내 미등록외국인을 ‘불법’이라는 단어의 옷을 입혀 사회문제로 바라보고, 집중단속을 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살기 위하여 해외취업을 할 커다란 용기와 자국에서는 해외취업 준비 비용(한화 1천만에서 2천만 원)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해외에 취업했다가 짧은 체류기간을 마무리하고, 좀 더 벌고자 미등록 상태로 남아있는 사람들을 단순히 ‘불법’ ‘범법’ 등의 수식어로 혐오와 사회문제로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의 이민정책이 조금 더 세련되어지고 합리적으로 변화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민자 관련 법제의 변화 이전에 우리들의 시선이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두에 언급한 중년의 남성 이야기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분은 한국에서 체류한지 이미 30년이 훌쩍 넘었다. 초기 5년 정도를 등록된 상태로 지내고 나머지 25년 이상을 미등록 상태로 거주한 것이다. 고국에 남겨놓고 온 아이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하고 손주까지 생긴 할아버지다. 다행스럽게도 디지털 기술의 혁명으로 영상통화를 통해 가족을 만나기는 하지만 얼마나 얼굴을 맞대고 살을 맞대고 싶겠는가? 단속 기간이면 더욱 그 마음이 간절하리라. 그분은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그분이 메고 다니는 허름한 가방에는 30여 년을 함께한 ‘성경’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삶이 고될 때,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고 성찬례에서 만난 육화한 예수님이셨단다. 고국에서 온 사람들에게도 본인의 미등록 상태의 신분이나 여러 개인적인 문제를 감추어야만 했다. 혹시나 본인과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어 신고라도 하면 영락없이 잡혀서 추방을 당해야 하기에 조심조심 말을 아끼고 스스로를 드러내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만이 30여 년간 삶의 기둥이 되었던 이분을 단지 법적인 용어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라고만 규정할 수 있을까? 하느님께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온 신앙인이라는 중요한 이름은 어디로 숨어있는가? 


그분께 축성된 성체를 건넬 수 있었던 그날은 사제로서, 신앙인으로서 참으로 행복하다. 적어도 성전에서는 불법체류자의 이름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불릴 수 있는 그 감격이 얼마나 클지 아직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오직 하느님!’이라는 모토로 나의 사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분께 기도를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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