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농사마저 포기하게 한 지구온난화
나는 2014년 12월 31일 교구청 종무식 미사를 끝으로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 지리산 원묵계에서 은둔의 삶을 시 작했다.
원묵마을은 해발 650m의 꽤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덕산이나 하동읍과는 기온 차이가 상당하다. 평균적으로 5-6도 차이가 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엄청 춥 다.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어서 일조(日照)량 이 적다.
산골이기 때문에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렇지않다.텃밭에서채소농사를지어서자가소비할정도 이지 농산물을 상품화해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예를 들면, 나의 텃밭에 50주 정도의 매실나무들이 있 다.섬진강변광양다압의매실마을에서는5월말이면청 매실출하를시작한다.매실이굵고크다.한편우리마을 에서는6월중순부터말사이에매실을수확할수있다. 그때는매실의상품가치가전혀없다.인건비를건질수 없기 때문에 수확을 포기하기 일쑤다.
나는지금매실밭과다래밭그리고녹차밭을가꾸고 있지만, 농사를 짓는다기보다 운동과 소일 삼아서 하는 일 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꿀벌들을 만나게 되었다.
원묵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산청군 시천면에 있는 덕산이다. 덕산은 남명 조식 선생의 마을인데 곶감 으로 유명한 곳이다. 어느 날 거리에 붙은 「양봉전문창업 과정 모집」이라는 벽보를 보고 교육에 참가하게 되었다, 수강료는 정부가 반을, 수강생이 나머지 반을 부담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평소 꿀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한달동안교육에참석했다.교육이끝날무렵「양 봉관리사자격」취득을위한시험을치게되었다.시험에 합격한 덕분에 나는 양봉 관리사 자격증을 얻게 되었다.
양봉관리사자격증소유자가된나는꿀벌다섯통을 사서 본격적으로 양봉을 시작했다. 첫해에는 아주 재미있 고 순조로운 양봉이 이어졌다. 벌통이 불어나는 재미도 있 었고,꽤많은양의꿀을따서이웃들과나누어먹는재미 도 있었다.
그러나 양봉은 쉽고 만만한 농사가 아니었다. 갖가지 작업 도구를 갖추어야 하고 쾌적한 꿀벌들의 삶을 위해서 벌집과 벌통은 물론 양봉장의 환경을 알맞게 가꾸어야 했 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밀원(蜜源 꿀과 화분을 얻을 수 있는 나무와 꽃)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벌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일-사양(飼養)이라고 함-이 힘들었다.
꿀벌에게는 여러 가지 질병이 닥치는데 바이러스와 곰 팡이, 진드기와 응애 등을 예방하거나 박멸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등검은말벌과 장수말벌의 습격은 꿀벌에 게도 생사를 가르는 전쟁이지만, 나에게도 꿀벌들을 지키 는 전쟁이었다.
다섯 통으로 시작한 양봉 농사가 이듬해 열다섯 통으 로불어났고,나는밤낮없이꿀벌을돌보는일에매달렸 다. 그리고 방문객들에게 벌꿀을 한 병씩 선물하면서 나의 양봉 농사를 뽐내기도 했다.
나의 양봉 농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병충해, 말벌 공격, 사양의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기후 온난화가 결정적인 충격이었다. 겨울은 추워야만 하는데, 매서운 추 위와 봄날 같은 따뜻함이 교차하면서 벌들이 혼란에 빠지 게되었다.
계절 감각을 상실한 꿀벌들이 겨울나기를 위해서 봉구 (蜂球 겨울을 나기 위해서 여왕벌을 중심으로 둥글게 뭉치는 현상)를 만들어서 벌통안에 머무는 대신 벌통밖으로 나오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급격하게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벌 들이얼어죽기도하고, 따뜻하기는 하지만 꽃도 없는 겨울에 집밖으로 나와서 길을 잃고 사라지는 벌들이 부지기수 (不知其數)였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을 때, 열다섯 통이었던 나의 꿀 벌은세통으로줄어들게되었다.나는고민에빠졌다.양 봉을계속할것인지포기할것인지결단을내려야했다.나는 그해초 여름장수말벌들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양봉을 포기하고말았다. 양봉을 시작한 후 삼년만에 나의 꿀벌농사는 허망하게 끝이 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