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이라는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남겨주셨다. 나무와 풀이 꽃피우는 이 계절은 참으로 아름답다. ‘생명’이기에 아름답다. 창조주로부터 존재와 생명을 받았으니 그리고 그 창조주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으니 우리 눈에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리라.
삶은 삶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삶도 죽음도 자연스러운 일. 모든 생명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그 모두가 신의 안배하심에 따라 자기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갈 일이다.
‘인간 생명’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인간 생명은 얼마나 존귀한가? 그런데 전혀 존엄하지 않게 다루어지는 생명들이 있다. 자연스럽지 않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터에서는 적대심과 승리에 대한 전의가 끓어 오르고 인권과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도 잊혀져 버리고 만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 벌어지는 전쟁으로 군인들 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 특히 여성과 아동들이 많이 희생되고 고통받고 있다.
‘재난’으로 그리고 ‘빈곤’으로 비참한 삶을 혹은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있다. 갈수록 극심해 지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잃고 신음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바로 우리 이웃에서 우리는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사고’로 그리고 ‘사회적 참사'로 그리고 ‘일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어처구니 없는 불의의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감정 갖게 되는가? 현대 세계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경제와 효율, 그리고 이윤의 극대화를 외치면서 사람의 목숨마저도 그 도구처럼 지극히 가벼운 하나의 수단처럼 취급되는 순간과 현장 앞에서 한숨과 눈물이 절로 난다.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그리고 일년에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어가는 사회적 참사도 이제는 멈추어야 할 일이다.
어떤 경우이든 이러한 참사들의 근본원인은 인간의 죄, 탐욕과 이기심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행한 이들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사랑’뿐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실천이 있어야 하겠다. 죽은 이들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고통 받는 유가족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헌신할 줄 아는 마음이 나와 우리를 치유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말을 귀담아 들을 일이다. 그렇다 ‘사람’이다. ‘사람’이 있다. 물건이 아니다.
먼저 자기 생명과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귀하게 여길 것이며, 모든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보살피도록 다짐하고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