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시기를 보내며 저희 수녀회의 고유 찬미가를 흥얼거리며 지냈습니다. “너희 만백성아, 손뼉을 쳐라. 기쁜 소리 드높이 하느님께 환호하라.” 일 년 전례 시기 중 부활 시기는 참으로 기쁘고 신이 납니다. 계절도 좋고 만물이 소생합니다. 더구나 오늘의 복음은 성화 ‘엠마오로 가는 길’의 소재가 되는 바로 그 복음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 성화를 보면 반복되는 생활의 답답함이 시원하게 해소되는 듯한 호젓한 오솔길, 거기다가 예수님까지 함께 계시니 행복 느낌 가득해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성화입니다. 그런데 기쁨에 취해 있던 저에게 오늘 복음은 찬물을 끼얹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루카 24,25)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이 말씀하신 것이 정녕 무엇이건데 제자들이 그리 믿기 어려웠을까를 찾아내는 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습니다. 바로 그다음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카 24,26) 그 구절을 접할 때 즉각적으로 제 마음이 외쳤던 소리는 이렇습니다. “아니, 아니에요. 고난은 아니됩니다. 그냥 영광 속에 들어가십시오.” 제가 외친 이 말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예고하실 때 베드로가 외쳤던 소리입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16,22)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라고까지 불리며 꾸중을 들었습니다. 오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매우 온유하게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이 범하고 있던 오류를 확실하게 짚어주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친절하시게도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과연 그 설명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는 그것까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명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서 그분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기대했던 그리스도의 영광은 고난이란 개념과는 도저히 부합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 역시 영광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는 고난과 관련을 짓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영광을 바랍니다. 신앙에 있어 우리는 천국을 바라며, 진학이나 취업에서는 합격을 바라고, 생활에서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바라고, 가족이나 친구관계에서는 화목을 바라고, 사회 안에서는 정의와 평화를 바랍니다. 어떤 면에서든 우리가 바라는 영광,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고난을 거쳐야 하고 그 고난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고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를 다시금 일깨웁니다. 현재 여러분의 생활 안에서 여러분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난을 밀어내지 않아야 한다고 오늘 복음은 가르쳐 주십니다. 흠 없고 티 없는 어린 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해방된 우리는 기쁨과 감사로 구원의 잔을 마시며,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의 잔도 마셔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