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봄비가 자주 내린다. 여느 때보다 잦은 봄비 때문인지 곳곳에서 잡초들이 하루하루 가속도를 내며 자라고 있다. 잡초들 사이로 반가운 아이들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비록 이름을 몰라 불러주지 못하는 수많은 들꽃과 풀들이 우리가 키우고 있는 경작물들 사이에서 크고 있는 것이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덮어주면서 정성을 다해 키우는 경작물들도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고 신경도 쓰지 않은 시간에 지천에는 하느님이 거저 주시는 귀한 먹거리들이 이름 모를 들꽃과 풀들로 자신의 생명력을 뽐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만큼 봄철이 되면 요셉의 집 수녀들의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밭에서 경작하는 작물들을 돌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두릅, 오가피순, 엄나무순, 가죽 등 제법 귀한 대접을 받는 것들을 단기간 거두어 들여야 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부지런히 가서 살피고 따와야 한다. 그뿐인가 수녀원 곳곳에는 봄철 가장 대표적인 나물인 쑥, 그리고 냉이, 달래, 씀바귀, 풍년초(일명 개망초), 신선초, 머위, 미나리 등등이 있다. 이것들이 1년 남짓 진동 요셉의 집에 살면서 혼자 밭에 가서 헷갈리지 않고 뜯어올 수 있는 먹거리들이다. 처음에는 국화도 쑥으로 보이고, 쑥이 국화 같기도 했고, 이파리가 크면 다 머위인 줄 알았지만 사계절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봄을 맞아서 밭으로 나가니 이제는 제 이름대로 제 꼴을 찾을 수가 있었다.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유안진 시인의 ‘들꽃 언덕에서’ 중 일부-
밭농사짓기도 바쁘지만 봄철 곳곳에 거저 자라나는 것들을 그냥 두기는 아깝다. 겨우내 찬바람을 이기고 좋은 땅의 기운을 가득 품은 먹거리들이 안겨주는 달콤 쌉싸름한 맛들을 포기한다는 건 하느님이 고이 키워서 거저 주시는 선물을 내치는 느낌이랄까!
생태공동체를 일구어 나가는 중에 가끔 딜레마에 빠질 때도 있다. 특히 요즘 같은 봄철, 우리가 다 거두기에도 버겁게 넘쳐나는 많은 먹거리들을 앞에 두고 있으면 밭 갈고 벌레 잡고, 풀 메고 수확하는 수고로움을 조금 덜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고추밭을 쑥밭으로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황당한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수고로운 노동과 하느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그 안에서 노동의 기쁨과 하느님이 숨겨놓은 수많은 먹거리들을 찾아내는 또 다른 기쁨을 느끼며, 우리 또한 자연스럽게 이 생활 안에 천천히 스며들어 가면서 진동 요셉의 집 우리만의 향기를 품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