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0.12.04 10:18

특별함의 극치, 평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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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수정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참~ 예쁘다!’ 
초등학교 3, 4학년쯤 된 여자 아이가 밭에 가는 길 도중, 도로변에 있는 한 시골 공소의 성모상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말합니다. 그렇게 밭에 갈 때마다 아이는 성모상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고 그 성모상과 친숙해집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는 열심히 다니던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옮겨, 예수님을 제외한 사람들 중에 가장 위대한 분, 특별한 분으로 생각한 마리아를 본명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대학생이 된 그 아이는 왼쪽 머리카락을 귀 위로 바짝 끌어당겨 진빨강의 역삼각형 머리핀을 꽂고, 진빨간 모직 자켓에 검정 바지를 즐겨 입고 다니는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저 멀리서 보아도 눈에 딱 뜨이는 색깔입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무슨 모임을 갖든 모든 활동을 할 때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항상 자신이 제일 잘하고, 잘 나고, 언제나 남들 눈에 뜨이는 특별한 사람이기를 바랐습니다.


일상적인 것, 평범하고 보통으로 보이는 일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차지도 않고 별 가치도 없어 보였습니다. 늘 특별한 것을 쫓아 여전히 특별나기를 바라며 지내던 어느 날, 잘 알고 지내는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특별나기를 바라지 않고 평범하게 살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하신 신부님의 말씀이 그 아가씨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그때부터 특별나고자 유달리 애를 썼던 마음의 많은 부분을 신부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하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랄까 갈망의 강력함은 더 크게 타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꽂혀 있던 그 아가씨의 뇌리에 한 생각이 떠오르며 자문을 합니다. 
‘사람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인간 중에 가장 특별한 분이 성모님이신데, 그분의 삶이 어떠했지?’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임에도 성경에 몇 번 등장한 것 외에 그 어떤 특별한 업적을 남긴 것이 없지 않은가? 오히려 눈에 뜨이지 않은 아주 평범한 삶을 주어지는 대로 충실히 살아가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그분이 온 인류가 추앙하는 특별한 분 중에 특별한 분이 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분인 그분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모든 일들을 평범함 안에서 충실하게 사셨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특별함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것은 지극한 평범함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른 아가씨의 마음은 그동안 자신을 온통 휘감았던 특별함에 대한 집착이 180도로 바뀌며 깊은 고요와 평화로운 기쁨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인 듯 마냥 출렁거렸습니다.


지금 그 아가씨는 하루 일곱 번의 기도와 미사, Lectio Divina(렉시오 디비나, 거룩한 독서), 육체노동, 식사, 잠이 잘 조화된 일과표에 따라 평생 봉쇄 안에서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관상 수도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은총이 가득한 이, 주님께서 함께 계신 이, 하느님의 총애를 받은 이인 시골 처녀인 마리아의 ‘예’는 이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든 인류를 당신의 가장 깊숙한 모태 안에 품으시며, ‘하느님의 모성적 행위의 성사적 존재’로 우리 모두 안에서 진정한 우리의 특별한 어머니로 현존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아드님이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지상 여정 바로 곁에서, 평범하게 흐르는 일상 안에 철저하게 또 충실하게 자신의 일생을 새겨 놓으신 성모님의 삶은 그래서 하느님을 관상하는 관상가의 모범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경축하며 다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에게 성모님을 감싸주셨던 그 같은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일상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관상하는 열매로 맺어지길 기도 드립니다. 

 

201206 8면 수도자(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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