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12.07 11:41

명례성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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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정아 안젤라 동화작가

231210 영혼의뜨락 원고 이미지(홈피용)명례성지-민창홍선생님 원고 이미지.jpg

 

가을이 깊어졌다. 명례성지 언덕에 서 있는 큰 팽나무도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팔을 벌려 반갑게 맞아주시는 성모님의 미소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세례 받기 전에도 몇 번 와 본 적이 있지만 재작년 세례 후 다시 왔을 때는 한 발 한 발 걷는 발걸음이 성지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될 때면 자연스레 명례로 향했다. 언덕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무거웠던 마음은 선물처럼 주어진 하루에 감사함을 느꼈다. 


고향이었던 동네와 폐교가 된 학교를 걸으며 어린 날을 떠올렸다. 낙동강 둑길을 자전거를 타고 많이 다녔는데 시골에 버스가 많이 다니지 않아서였다. 그때는 가난한 시절이라 강변에 밭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비가 와서 강물이 범람하면 농작물을 모두 망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자전거 도로와 갈대밭이 조성되고 오토캠핑장까지 들어섰다.


즐거운 기억이 별로 없는 고향이라 거의 잊고 살았었다. 그런데 그림처럼 아름다운 성지가 조성되어 나를 이끄는 장소가 되었다.


성경의 구절 중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리라.”(시편 23,1-3)는 구절이 있다.


이 시편은 읽을 때마다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마치 내가 푸른 풀밭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과거 이스라엘 땅은 넓은 광야였을 것이다. 황무지 땅에 물이 흐르고 풀밭이 있는 곳은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운 곳이었다. 목자이신 주님의 보호와 축복으로 물가를 찾게 되고 영혼에 생기를 얻을 수 있었고, 풀밭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 


성당에 다니게 되면서 마음의 갈등이 자주 찾아왔었다. 그것은 나의 행동에 대한 죄의식으로 연결되는 갈등이었다. 성당을 나오기 전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싫고 좋음이 상대방을 고려하기보다 나를 위주로 쉽게 결정을 내렸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상황이 오면 내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불편한 마음도 곧 나의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다. 


문득 내가 한 마리 양이 되어 풀을 뜯는 상상을 해 보았다. 아직 막막하고 부족한 의지를 가진 양의 모습이었다. 힘든 오르막 또는 망설임의 갈림길에서 성급한 결정보다는 천천히 기쁜 마음으로 목자가 이끄는 대로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신앙심을 채우기까지는 먼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사랑이신 말씀의 빛이 내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다리며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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