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우 순교자 묘지
표지석
명례방明禮坊
문턱의 높이는 무엇으로 재는가
한 걸음만 떼면 넘을 수 있는 것인데
양반집 대문은 태산준령처럼 높다
넘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넘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수표교 지나
한 걸음이면 높낮이를 가늠할 수 있는
명례방明禮坊
넘지 못할 사람이 없다
스스로 문턱을 낮추는 사람들이 모여
스스로 천주실의天主實義 펼쳐 놓았으니
천민부터 양반까지 자유롭게 넘을 수 있다
문턱의 높이가 사라진 집
보고도 믿지 못하는 진리를
보지 않고도 믿어버리는 마음으로
사랑의 창문 활짝 열렸다
조선의 선구자 명례방 주인
진정한 신앙인의 문턱을 넘었으니
평등과 자유의 외침
고개를 숙인다
성모동굴성당 입구
성모동굴성당 성전
김범우 순교자 성지
우리나라 최초의 영세자는 정약용의 자형인 이승훈이고, 그의 손위 동서인 이벽과 가까이 지내던 김범우는 1784년 천주교에 입교하여 이승훈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집 명례방(현, 명동성당 부근)을 천주교 신자들에게 내어주고 비밀 신앙 모임을 하다가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형벌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양반들은 풀려났는데 중인인 김범우만이 유배를 갔다. 유배된 지 2년 만에 형벌의 상처가 악화되어 1786년 세상을 떠났다.
기록에는 김범우의 유배지가 단양으로 알려졌으나 1980년 초 김범우의 후손이 나타나면서 밀양 단장임이 밝혀졌고 1989년 김범우 외손의 도움으로 묘를 찾았다. 발굴 당시 치아와 십자가 모양의 돌멩이 세 개가 나와 이곳을 김범우 묘로 단정하였다고 한다. 부산교구에서 2005년 9월 14일 김범우(토마스) 묘역 준공 미사를 거행하였고 2011년 9월 명례방을 본뜬 한옥 모양의 외관과 성전에 십자가 대신 돌멩이 세 개 모형을 한 성모동굴성당을 봉헌하였다.
성인 유해
민창홍 요한 시인(시, 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