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청년 시절, 병역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머리 빡빡 깎고 신병교육대에서 군인이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익숙지 않은 고된 훈련에 하루하루가 너무 고달프니 오로지 주일만 기다렸고 일요일엔 쉰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휴일이라 해서 훈련병들을 종일 쉬도록 내버려 두진 않는다. 청소를 시키거나 연병장 풀을 뽑게 하거나 내무반 정리 정돈을 하게 하는 등 뭐라도 하도록 한다. 그러나 매주 일요일 오전 9시경이면 스피커를 통해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으니 “각 소대 아멘들은 지금 즉시 행정반 앞에 집합할 것” 연이어 “각 소대 목탁들도 행정반 앞에 집합” 이라는 마치 복음 같은 전달 방송이다. 후다닥 달려 나가 정렬해서 대기하고 있으면 군종병이 나타나 교회와 법당으로 인솔한다. 진짜 신자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가짜 신자들도 많이 끼어 있었다. 이윽고 종교별로 예배와 법회를 마치면 나누어주는 초코파이를 먹으면서 누구의 간섭과 지시도 받지 않는 공간에서 그야말로 아주 꿀맛 같은 행복한 휴식 시간을 보낸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기독교 신자와 불교 신자라고 칭하지 않고 ‘아멘’과 ‘목탁’이라고 호칭한 그 전달병의 유머가 참 재미있는 추억으로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 있다.
도로를 주행할 때면 앞서가는 차량의 뒷유리창에 붙어 있는 다양한 스티커들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가! 난 이미 틀렸어”, “무면허와 다름없음”, “장롱 면허 오늘 처음 도로에 나왔음” 등의 글귀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한 때는 여성 운전자들의 “밥하고 나왔음”이라고 쓴 스티커도 있었으며 또한 “내 삶의 목표는 오늘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것입니다”라고 길게 써 붙인 초보운전자들의 유머와 위트에 도로 주행이 사뭇 즐거워진다. 그러나 “내 새끼가 타고 있다”라고 다소 거친 문구를 붙인 스티커도 보였다.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눈살 찌푸리게 되니 좀 더 순화된 표현을 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지난날 학창 시절 초보 신자일 때 고해성사를 보고 다음 날만 되어도 영성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눈여겨보신 신부님께서 어느 날 불렀다. “넌 왜 영성체를 하지 않니?” 하시기에 “저는 성체를 영할 만큼 마음이 깨끗하지 못합니다.”라고 답변하였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세상에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밥 먹을 자격이 있어서 밥을 먹고, 하느님 자녀가 될 자격이 있어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겠느냐?”며 야단치시듯 말씀하셨다.
죄 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한 인간을 구출해 내는 하늘과 교감하는 신부님의 지혜와 언변은 가히 달인급이었다. 그때 신부님께서 철딱서니 없는 고등학생에게 하신 “세상에 밥 먹을 자격이 있어서 밥 먹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그 말씀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속에 잘 간직되어 메아리치고 있다. 말은 생각을 담은 그릇이라 한다. 유머도 좋고 위트도 좋지만, 내공이 쌓인 무게 있는 말은 그야말로 천 냥 빚을 갚을 만큼 오래도록 큰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