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담화

1995년 성탄 대축일 담화문-“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

posted Jun 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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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성탄 대축일 담화문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

(루가 2,16)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즐거운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성탄절은 가정적으로 즐거운 축일입니다. 이 성탄절의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탄생하시는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섭섭하게도 지금 우리는 기쁜 성탄절을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한 가운데 맞이하고 있습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지난 가을부터 우리 사회는 정치적 및 경제, 사회적 현실이 매우 어둡고 마치 봇물이 터지듯 지난 2, 30년 동안 쌓이고 쌓인 사회의 갖가지 부조리가 한꺼번에 터져나와 밝은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시대적 상황과 그리스도 신자의 사명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 신자로서 세상을 죄에서 구하기 위해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성탄에 맞갖게 경축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을 경축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으로 성대한 잔치나 행사를 벌이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대한 외적 행사와 잔치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세주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탄생이 오늘의 우리 현실에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서 오늘의 ‘시대의 징표’(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4; 사제직무 9참조)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궁구(窮究)하고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삶을 가다듬어 나가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와 악을 물리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는”(시편 85,10) 새로운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예수님 탄생의 목적이 달성되는데 걸림돌이 되는 너무나 많은 사건,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이 시대적 상황을 적시하여 이 상황들을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 비추어 해석하고 개선함으로 세상 구원에 이바지하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시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의 주변 상황과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들은 성탄절을 지내는 우리들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그 “상황들이 뜻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상황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계획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認知)할줄 알아야”(시대의 징조에 대한 해설 7권 699항)합니다. 즉 오늘의 ‘시대의 징조’를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비교적 평화스러운 사회적 상황과 고요와 평화가 깃든 밤중에 이루어졌습니다. 거기에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격동과 소란같은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여관방에서도 자리를 얻지 못하고 가난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말구유에 탄생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호텔방의 편안함도 휘황찬란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은 가난하고 힘없는 보통 서민의 모습이었고 그 탄생은 그날 밤 오로지 순진하고 사회적으로 힘없는 목동들에게만 알려지고 그들만이 경배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세상의 위세나 권력을 과시하는 모습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 탄생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과는 너무나 다르고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여기에서 오늘의 ‘시대적 징표’를 읽고 이번 성탄절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이해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시대의 징표와 성탄의 메시지

오늘날 우리 사회를 극심한 혼란에 몰아 넣고 있는 근원적 악의 뿌리는 우리 사회에 넓게 만연되어 있는 극단적 현제수의와 물질주의, 황금 만능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재물을 최상의 가치와 인간 행복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길 때에 윤리 도덕과 정신적 가치 등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의 재물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빚어낸 사회적 혼란은 오늘 우리 나라의 기틀을 뿌리채 흔들어 놓고 온 국민을 극도의 허탈감에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부유층에는 물론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극심한 사치 풍조는 우리 사회를 깊이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골로 1,16)된 예수께서 가난한 모습으로 말구유에 탄생하신 사실은 세상 재물이 인간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인간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 성탄의 메시지를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주님으로 섬기며 세상 사물은 오로지 조물주이신 하느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수단 방법으로만 삼아야함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구유에 탄생하신 예수님의 성탄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우리가 교만과 권력에 대한 갈증과 욕망에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력에 대한 갈증과 집착은 인간 존엄성을 유린하고 인간 생명까지 담보로 하는 비인도적 범죄를 자행하게 합니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 동안 그러한 여러 가지 정치적 비행과 군사 반란 등 쓰라린 경험을 하였고 국민 대다수가 그 피해자들입니다.

모든 권위는 근원적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마태 11,25; 로마 13,11)이며 예수님은 그 권위를 한 몸에 지니고 계시는 분(마태 28,18; 요한 5,22; 17,2)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가장 연약하고 가난한 인간의 모습으로 작은 고을 베들레헴의 마굿간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권위를 힘으로 억누르는 방법으로가 아니고 당신의 땀과 피를 흘리면서 봉사함으로써 행사하셨습니다. 사랑의 봉사가 예수님의 권위 행사의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권력자들은 진정한 권력 행사는 사람들을 돕고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는 구세주 성탄의 메시지를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성탄절은 매년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매년 같은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금년 성탄절은 예년과는 특별히 다른 메시지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이 성탄의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가다듬는 계기로 삼는다면 금년 성탄은 우리 모두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큰 은총이 될 것입니다. 탄생하시는 아기 예수님의 은총이 여러분 가정과 우리 사회에 충만하기를 기원 합니다.

1995년 성탄절에,

교구장 박정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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