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4.04.17 17:00

똥이 다르게 보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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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예수 성심 시녀회/ 진동 요셉의 집

240421 진동요셉의집 이미지(홈피용).jpg

 

지난번에 이야기 한 대로 진동 요셉의 집은 생태공동체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역할을 지구 한끝 진동에서 미약하나마 실천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살았거나 농사 경험이 있는 수녀들은 삽질도 며칠이면 금방 익숙해지고 지천에 나 있는 풀들 안에서도 먹을 것을 금방 찾지만 리얼 도시녀인 수녀들은 사실 한동안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삽을 드는 것도 연필 들듯이 하고, 마늘인지 양파인지도 구분하기 힘들고 지렁이, 벌레를 보면 연장은 하늘로 날아가고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서 옆에 있는 수녀님이 해결을 해 줘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고 닭장 계란 꺼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보편적인 시골 생활 적응도 얼마간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는 더 나아가 땅을 살리는 농사를 짓고 있으니 넘을 산이 많은 게 사실이다. 


소변, 대변은 아주 귀중한 거름이 된다. 그 사실을 알기는 하지만 그동안 물만 내리면 나의 자취를 내 눈앞에서 없애주는 편한 방식에서 직접 소변을 모으고 대변이 차면 거름에 갖다 버리는 생태화장실을 사용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똥이 똥으로 보이지 않고 귀한 거름으로 보이고 똥통을 들고 거름에 갖다 버리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수세식 화장실에서 처리한 것들이 오수가 되어 여러 차례 공정을 거치고 바다로 버려지지만 우리 공동체에서는 우리 몸에서 나온 것들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 귀한 거름으로 바뀌고 그 과정도 단순하고 깨끗하다. 


사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내 앞에 있는 것들이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못나 보이던 순이가 미스코리아같이 예뻐 보이거나, 도저히 이겨내지 못할 파도가 어느새 편하게 넘어가질 때. 변한 건 없는데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뿐. 똥이 더럽게 보이지 않을 때가 온 것이다. 부활의 기쁨도 십자가가 다르게 보일 때 시작되는 거 아닐까. 


부활 시기를 보내며 새롭게 우리 공동체를 바라본다.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기 위해 모인 우리지만 정작 땅을 통해서 우리의, 나의 모습이 새롭게 바뀌고 있다.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 안의 영을 새롭게 하시는 분 그분의 힘이시다. 


생태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모든 피조물들을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습대로, ‘보니 참 좋았다’라고 하셨던 원래 그 모습대로 모든 것을 제 자리에 있도록 하느님의 조력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느님 곁에 좀 더 가까이 있으면서 그분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피조물을 바라보는 삶. 그 안에서는 예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눈앞에 쥐꼬리가 아른거린다. 아직 쥐는 예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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