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4.03.28 09:13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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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예수 성심 시녀회/ 진동 요셉의 집

진동 요셉의 집은 수녀들이 농사짓고 기도하고 피정의 집을 운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별칭도 가지고 있는데 ‘생태공동체’라고 한다. ‘생태’라는 말이 생소하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예전에 비해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많은 분들이 ‘생태’라는 말을 하면 환경보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환경’은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고 ‘생태’는 세상 모든 만물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모든 피조물과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관점에서 시작된다.


보통 신자들이 생각하는 수도자는 본당이나 병원, 사회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수녀님들을 떠올리지만 우리처럼 농사짓는 수녀들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농사도 그냥 농사가 아니라 예전의 방식으로, 웬만하면 손으로 경작하고 화학비료는 일체 쓰지 않고 농약도 뿌리지 않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기에 농사일을 아시는 분들은 왜 그렇게 어렵게 농사짓느냐고 한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의 별칭인 생태공동체를 말 그대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택한 방식이다.


생태공동체인 진동 요셉의 집의 하루를 소개해 보면 어렴풋이 ‘생태’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 지면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소개해 보겠다.


요셉의 집에는 6명의 수녀와 두 마리의 개 그리고 백삼십여 마리의 닭이 함께 살고 있다. 오늘 주인공은 닭들이다. 아침 일상이 시작되면 닭장 소임을 맡은 수녀님은 닭들이 골고루 먹게 하기 위해 과일 껍질을 한 번의 공정을 더 거쳐서 아주 잘게 다진 후 먹이에 섞어주고 닭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인 육수물 내고 남은 멸치와 무, 다시마도 역시나 잘게 다져서 먹인다. 가을에는 밤이 지천이니 밤을 주워 삶아 껍질을 까서 곱게 다져 닭들에게 바친다. 웬만한 제사상에 올리는 정성과 비슷하다 싶다. 가끔 밭에서 고단백질인 지렁이나 벌레를 만나면 그날은 닭들 잔칫날이다. 이렇게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 닭들이 계란을 쑥쑥 잘 낳아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겨울이 되면 하루에 한 알도 구경 못하는 날도 있다. 자본주의 경제원칙에 따른다면 인력과 자본, 시간 투자에 비해서 생산량은 턱도 없이 부족하니 허튼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생태공동체이다. 일반 양계장처럼 계란 생산을 목표로 밤낮없이 밝게 해 두고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는 방법이 아니라, 닭들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알을 낳고 건강하게 자라면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계란을 주면 주는 대로 받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도 인간인지라 애써 먹이 주고 청소해 주고 돌봐줬는데 기껏 계란 한두 개 낳은 걸 보면 기가 찬다. 

 

240331 수도자-진동요셉의집(홈피용).jpg


닭을 키우는 생태공동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닭’이란 피조물이 원래 지닌 본능대로 제 수명을 살고 억지로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닭들이 낳을 수 있는 만큼의 계란을 우리가 공급받고 우리는 닭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은 모든 피조물들이 제 꼴대로 살면서 핍박받지 않고 손해 보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 우리 모두도 어딘가에 살면서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내 모습대로 그렇게 기쁘게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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