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희년의 근거는 레위기 25장에 있습니다.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10절) 하신 하느님의 명령이 희년의 기본 정신이며, 당신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고”, 그 백성의 “하느님이 되려고”, 백성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38절)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 의지가 그 바탕입니다.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신 이집트 탈출 ‘사건’을 토대로 하느님의 구원의지가 희년규정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면,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4,18-19) 하신 예수님에 의해 하느님 뜻이 현실화되었습니다. 그렇게 희년의 정신은 우리의 일상적 ‘삶’으로 들어오고 교회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희망
2025년 희년칙서가 제시하는 핵심 메시지는 ‘희망’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로마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전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희망 안에 ‘서 있다’는 희망의 종말론적 특성은 바오로 서간집 전체의 핵심 주제이지만,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희망을 더 특별히 강조합니다. 이는, 이제 바오로의 시선과 활동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 로마가 의미하는 모든 것으로 향”(칙서 2항)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는 세상의 지배자로서, 세상적 힘과 영광의 정점이었습니다. 바오로는, 그런 세속의 힘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겪을 수 있는 환난이, 좌절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환난이 인내를,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낸다’(로마 5,4)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실망시키지, (공동번역)]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5,5)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며,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5,1-2참조)
아브라함의 믿음, 할례, 우리의 믿음, 세례
우리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 그러한 인정을 받았습니까? 할례를 받은 다음입니까? 아니면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입니까? 할례 받은 다음이 아니라 할례 받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는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에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확증하는 것으로서 할례라는 표징을 받았습니다. (로마 4,9-11)
그리스도인은 세례 ‘예식’을 받아 신자로 등록된 사람을 일컫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믿음의 표징이 세례인 것이며, 그 믿음이, 희망을 줍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다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할 수 있습니다. 그 희망의 토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변함없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