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희망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우리의 신앙생활은 세례로 시작되고 하느님 은총을 따름으로써 발전되어, 성령의 활동으로 언제나 새로워지고 흔들리지 않는 희망으로 활기를 얻습니다. 성령께서는 순례하는 교회의 삶 안에 항구히 현존하심으로써 희망의 빛으로 믿는 모든 이를 밝혀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우리 삶을 지탱하고 활력을 주는 그 희망의 불이 타오르도록 지켜 주십니다. - 희년 칙서 2,3항
므네메, 성령의 기억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헌장 10항)입니다.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 제사를 기념하기에, 성찬 제정 말씀 후 드리는 기도를 기념, 또는 아남네시스라 부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62항 참조). 이 기념은 구원 사건을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사건으로 우리 가운데 체험되도록 현재화시키기에,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거나 상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합니다.
기억은 과거를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현재의 시공 안으로 현재화시키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지만, 동시에 늘 망각을 동반한 기억입니다. 전례가 교회 활동의 정점이면서도, 그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교회의 힘이 약하다면, 그 것은 망각을 동반한 기억 때문입니다. ‘현재화’시키는 전례적인 기억, 기념으로서의 아남네시스를 넘어, 늘 ‘현재’인 기억이 요청됩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존재론적 기억으로, 모든 것을 자기 ‘기억의(mnemonico) 태중’(신성 내부, 삼위일체 내부의 태 중)에 현재의 것으로 보존하신다. 그는 신적이고 절대적인 기억(Mneme므네메)이며, 따라서, 망각하기 때문에 되살릴 필요가 있는 인간의 기억, 곧 아남네시스(반복적, 회복적 기억)가 아니다. 그 성령은 또한 그리스도의 전 역사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 「성사, 상징과 신학」, Giorgio Mazzanti(조르지오 마짠티).
기도, 성령의 기억으로 살기
“Ite, missa(미싸) est,” (가시오. 여러분은 파견missa되었습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미사 끝에 신자들에게 하는 사제의 라틴어 파견인사입니다. 전례로서의 미사뿐 아니라 전례 후 파견되어missa 살아가는 모든 일상이 미사여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기억은 전례적 기억에만 머물고 전례적으로만 회복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당에 왔을 때와 세상을 살아갈 때의 나는, 같은 ‘그리스도 신앙인인 나’여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는 영적인 “생명의 숨결”이라 하신 교황님 말씀처럼, 성령의 그 므네메 기억이 나의 온 존재에 새겨진 기억, 뼈에 사무친 기억이 되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억을 내 체험으로 각인시키고 내 삶에 통합시켜, 그 기억의 화신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살다가 기도 시간에 기도하는 게 아니라, 기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희망은 우리 “영혼의 닻”(히브6,19)으로서 우리를 지켜주고 이끌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