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2021.10.28 11:43

새로운 세대의 경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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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학생들의 애정을 담뿍 받은 이 협동조합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계기는 2018년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모의 창업 프로젝트였다. 학생들은 15개의 기업을 가상으로 만들고 매출 경쟁을 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친 전태일 열사,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문제를 알린 단체 반올림 등에 대해 배운 뒤였다. 학생들은 “나는 절대로 노동권을 침해하는 사장이 되지 않겠다.”라는 수업 후기를 써냈다. 그러나 당초의 각오가 지켜지지 않았다. 비용을 아끼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 쓰레기를 불법 매립하거나 재료의 원산지를 속이는(물론 가상 상황에서) 기업이 나왔다. 심지어 노동착취도 발생했다. 

-시사인, 210914. 협동조합 만든 초6 ‘사회적 책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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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경제교육에 대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과거에는 절약, 저축 등이 그 내용이었다면, 요즘은 주식, 자산 증식 등에 관한 것이 주가 되기도 합니다. 돈이란 것이 현실 삶에서 꼭 필요하고 돈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기에 경제교육은 직접적인 방식으로든 간접적인 방식으로든 유용합니다. 그러나 그 교육의 결이 어떠해야 할지는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당시 모의 창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서한솔 교사는 “애초 목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권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탈법에 해당하는 행위도 발생하는 걸 보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사회의 인식이 아이들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전달돼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형식의 경제활동 교육이 필요했다. 교사들은 협동조합을 떠올렸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는, ‘돈’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기본 틀이며, 게다가 그 ‘돈’을 위해 목숨까지도 걸고 경쟁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한국 드라마가 이것의 문제를 보여줍니다.)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세상이 그러니 거기에 편승해서 나도 그 흐름에 한몫을 할지, ‘우리’라는 가치를 위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야 할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1년 4월 협동조합 ‘판다와 사자’(*동물 이름 아님) 창립총회가 열렸다. 조합의 주요 상품은 원목 도마, 양말목(양말을 만들고 남은 고리) 방석, 소창 행주 등으로 정해졌다. 6학년 학생 51명이 실과 시간에 각각 한 개씩 물품을 만들었다. 주 고객은 학부모, 지역 주민, 상천초등학교 교사, 입소문을 들은 다른 학교 교사들이었다. 국어 시간에는 상품기획안을 발표하고 판매 전략 회의를 했으며, 수학 시간에는 회계 처리와 매출 분석을 했다. 5월에서 7월까지 판다와 사자 총매출액은 무려 212만여 원.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도마가 차지했다. 총 손익은 마이너스 72만여 원이다. 선생님들은 “선방했다”라고, 학생들은 “아쉽지만 처음이니까” “생각보다 많이 벌었다”라고 평가했다. ‘재고’는 주변에 나눴다.


학생들은 경제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오히려 손해를 봤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 ‘돈 그 이상’에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판다와 사자의 경영시스템은, 제품을 많이 팔아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시장 패러다임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학생들 사이에서 ‘최대 매출이 곧 승리’였던 모의 창업 프로젝트 때와는 다른 모습들이 이어졌다. 모의 창업에서 학생 중 일부는 높은 매출을 올려 ‘자기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사장’이었을 뿐이다. 경영권도 단독으로 행사했다.
그러나 판다와 사자는 협동조합 기업이다. 학생들은 ‘단독으로 경영 의사를 결정하는’ 사장이 아니라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여기서는 모든 조합원이 생산과 경영에 민주적으로 참여하고, ‘자기(우리 기업) 이익’뿐 아니라 ‘환경보호’ ‘지역사회 기여’ ‘(기업의 수익 극대화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격수준’ 같은 별도의 경영 목표까지 설정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돈을 어떻게 버는 것이 정당하고 가치 있는가 하는 것에 더하여, 힘의 논리가 아닌 공동체성의 원리까지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6학년 1반 담임 고민복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 고민의 방향이 바뀌었다. 협동조합 형태가 아닌 기업을 운영할 때는 법망을 피해서라도 매출을 올리는 데 더 초점을 뒀다. 이번엔 ‘나무 제품을 만들려면 나무를 베어야 하는데 이 나무 제품이 진짜 친환경 물품이 맞을까?’ ‘목공 선생님의 인건비를 적절하게 반영하면서 친환경 물품의 대중화를 촉진하는 가격적정선은 얼마일까?’ 이런 질문들을 갖고 학생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었다.”


신자가 되고 싶다고 성당을 찾은 분을 보고 본당 신부가 반가워하는 그 속마음이 ‘흐흐흐, 돈 보태줄 신자 한 명 더 늘었군.’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교회도 돈이 있어야 굴러갑니다. 그렇다고 신부가 저런 생각으로 선교를 하고 신자들을 바라본다면 정떨어지겠지요?  


요즘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물론, 경제력, 군사력 등 외형적 힘도 많이 성장했지만 무엇보다도 문화라는 소프트웨어가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언론들은 이런 문화적 영향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말합니다. 성당에 찾아온 초심자를 보고 머릿속에서 계산기 두드리는 본당신부랑 다를 바 없는 겁니다. 


현생 인류를 정의하기 위해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란 표현을 쓰듯,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란 용어를 만들어내어 인간에게 적용합니다. 반면 여러 다른 경제학자나 철학자, 인류학자들은 이런 용어를 바탕으로 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 우려를 표합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효용성’이라는 잣대로, 마주치는 경쟁자들을 장애물로 여겨 제거하려 합니다. 딱, 앞서 언급한 그 드라마 속 이야기입니다. 사람이든 뭐든 돈으로만 보고, 돈이 되면 이용하고 돈이 안 되면 버립니다. 내가 남을 그렇게 여기면, 남도 나를 그렇게 여길 것이고, 결국 “다 죽어” 버리는 게 결말일 겁니다. 만약 어떤 부모가 자녀에게 돈이 최고라고 가르친다면, 그 자녀는 커서, 부모를 돈 때문에 이용하든지 돈 안 된다고 버릴 수도 있겠지요. 


경제만이 우리 삶의 전부일 수 없습니다. 경제는 우리 삶의 ‘중요한 한 축’이지만, 삶의 다른 모든 부분들과 어우러져야 할 ‘하나의 축일 뿐’입니다. 그리고 경제란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런 통합적인 의미를 가질 때, 돈이 중심이 되는 경제가 아닌 사람과 삶이 중심이 되는 경제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사회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돈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 -코헬(전도) 5,9  
돈은 더 해서 무엇해요? 그 돈 때문에 우리 아이를 희생시킬 수야 없지 않아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만큼만 가지고 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토빗 5,19-20(공동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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