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1.12.02 13:26

나의 변방, 우리의 변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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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수정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간절한 속량의 시기에 공동체 생활, 형제 생활 안에서 나의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비우는 것,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벌거벗겨짐을 당하는 일’ 없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벌거벗겨짐’은 나의 민낯, 수치스러움, 모욕감, 감추고 싶고 감추어 왔던 불편한 진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의 모습을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직면하게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자타自他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이 필수 과정이 이른바 ‘파스카 체험’, 곧 ‘예수님의 자기 비움(케노시스)에의 참여’라는 말로 일컬어집니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것’, 이것이 얼마만큼 가능할까요? 내 생각과 같은 말을 들을 때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공감하며 상대의 입장에 서는 것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럴 때 보통 자신이 타인의 말을 잘 경청하고, 타인의 아픔에 예민하게 공감하고, 늘 상대방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오인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나의 판단과 생각, 가치관과 다르고, 나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 더구나 나에게 해를 입히며 적대적인 입장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말을 그 사람이 의미하는 바 그대로 듣고, 그의 아픔에 순수하게 공감하며, 그의 입장에 그대로 설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과연…??? 


공동체 생활, 매일의 일상에서 크게 작게 다가오는 도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형제들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 감정, 입장’ 앞에서 나는 이것을 얼마만큼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행동하고 있는가? 결국 이것이 내 삶의 수준, 복음적 가치의 내면화 정도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척도임을 살아갈수록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대림 제2주간을 맞는 복음 말씀들 중에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리고,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 마리아라는 ‘처녀’에게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지금 이 시대에도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계신다고 확신하시며, “하느님께서는 ‘변방과 가장자리’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하십니다. 계속하여 “예수님께서는 변방과 가장자리를 선호하십니다…주님께서는 언제나 변방에서, 우리 영혼의 변방에서, 감정의 변방에서, 아마도 우리가 부끄럽게 여기는 감정 안에서 남몰래 행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지리적이고 실존적인 변방에서 지속적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예수님께서 항상 변방으로 가십니다…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변방, 우리 영혼의 변방, 우리 사회와 도시와 가정의 변방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부끄러워하며 보여주지 않으려고 감추는 우리의 약간 어두운 부분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수요 일반 알현 교리교육 중에서, 2021년 11월 17일)


너의 변방, 타인의 변방이 아니라, 나의 변방, 우리의 변방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영접하는 ‘구원의 시기’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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