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1.12.27 16:32

드러내심, 순히 들음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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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수정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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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기후 위기와 코로나 대유행, 지속적인 변이 발생으로 암울해져 가는 이 어둠의 세상 속에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 오늘 교회는 무한에서 유한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이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임금님으로 당신을 드러내심을 경배하며 경축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인 동방 박사들, 헤로데 임금,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방 박사들은 헤로데 임금에게, 헤로데 임금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문의를 하고, 예언자가 기록해 놓은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헤로데에게 그 대답을 주고, 헤로데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동방 박사들에게 알려주며, 동방 박사들은 그 임금의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길을 떠나, 마침내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온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 자기 고장으로 돌아갑니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진솔하게 문의하고, 던져진 질문의 답을 성경에서 찾고, 찾아낸 그 해답을 전해주고, 전해준 이의 말을 어떠한 의심도 없이 듣자마자 바로 실행하는 이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은, 하느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지, 들음의 진정성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지라는 우리 신앙 여정의 역동성을 선명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로마 10,17 참조).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것을 알려준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그대로 듣고 응답하셨던 동정녀 마리아의 상황이나, 과학 기술 문명이 최고조에 달한 현재의 우리의 상황이나 하느님께서 이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 조건은 별다름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께서는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신앙으로 알아듣는 ‘귀 기울여 순히 듣는 경청傾聽’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그분 규칙서 머리말의 첫 말씀이 ‘들으라Obsculta’로 시작하는 것을 미루어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는 부모의 말씀에 부모는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교회 안에서 신자들 서로 간에, 신자와 사제들 사이에, 수도자와 사제들 간, 사제들과 주교들 상호 간에 귀 기울여 듣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친교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 하느님 백성 전체가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며 함께 걸어가야 할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의 여정,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온 교회에 요청하신 바로 그것이며,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오늘날 당신을 이 세상에 들음 안에서 현현顯現하시는 주님 공현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 상호 간의 들음, 상호 순종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바이러스의 세계 그리고 하늘과 땅, 바다 그 안에 함께 호흡하는 모든 피조물들의 울부짖음에 더 민감하고 깊이 귀 기울이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지구를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시키고 행동하는 생태적 회심과 들음의 감수성을 더 크게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희망의 한 해 되시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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