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2.01.28 16:44

귀인歸因 경향과 자기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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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수정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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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기도 때 일어난 일입니다. 모두가 경건하게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옆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뭔가 왔다 갔다 합니다. ‘무슨 소리지?’ 하는 분심과 함께 그 소리에 점점 신경이 곤두선 순간, 뒤쪽의 수녀님이 내 등을 툭 칩니다. 잠깐 분심한 사이, 내 순서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아차!’ 내 실수를 깨닫는 동시에 내 안에서 일어난 반응은, ‘아니,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 시간에 꼭 그런 일을 해야 하나?’ 속으로 짜증을 내며, 내 실수의 원인을 잡음을 낸 그 주인공 수녀님 탓으로 바로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이렇게 글로 표현하니까 제법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순식간이었고, 나의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는 나의 귀인歸因 경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불편한 진실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경악할 일은 남 탓을 하는 이 귀인 경향이 현재 나의 일상 아주 작은 일들 안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형제들과 우리 사회, 전 인류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원죄의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입니다.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는 하느님께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한 ‘사람’과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라는 하느님의 질문에 “뱀이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하고 대답한 ‘여자’와 똑같이…(창세 3,11-13 참조) 


고기를 가득 채운 두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된 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7-8 참조)라고 고백한 시몬 베드로처럼 자신이 온전히 벌거벗겨진 죄인임을 뼈 속 깊이 인식하며,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할 수 있는 영혼의 소유자는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교회의 통찰처럼, 우리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자기 인식은 직면하기 어려운 불편한 진실들에서 자신이 절대적으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알아듣고, 그 구원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겸손되이 인정하는 그 자체가 이미 구원받았다는 하나의 뚜렷한 표지입니다.


또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의식은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ㄴㄷ) 하신 예수님의 그 말씀이 자신을 살리는 구세주께서 선포하시는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바쳐드리는 희생제사를 합당하게 봉헌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반성하는 참회 예식 때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불편한 진실을 정직하게 대면하여 가슴을 치며,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담아 고백하게 됩니다.


불편한 진실이야말로 참으로, 복된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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