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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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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마음은 격언을 되새긴다. 주의 깊은 귀는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이다(집회 3,29). 동아시아 문명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는 논어(論語)를 빼놓을 수 없다. 논어는 공자(BC 551-479) 사후, 공자가 제자들과 학인 정치인들을 만나고 나눈 이야기를 제자들이 모아 만든 편집본이다. 공자는 지금 같은 인간생활을 상상하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논어에 공감하고 공자의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논어 일부 중 여성과 아동, 이민족에 대한 당시 시대적 편견을 드러낸 부분은 거부하지만, 그 나머지는 인간다움을 찾는 내용의 논어는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2500년 전 사람도 불의를 보면 공분했고, 전쟁보다 평화가 지속되길 바라고, 아름다운 예술을 보고 들으면 오늘날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즐거워했다. 


인간이 과거보다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도 인간적 약점을 극복하고 신적인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은 자신의 힘에 의존해 위기를 극복하고 위기를 풀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위기 극복의 지침은 집단지혜의 결실로 전통과 문화를 담은 경전이나 고전을 보게 된다. 대부분 경전은 원래 구술이었고, 문자로 정착되기까지 기억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졌다. 중국의 고전들도 권위를 얻어 높이 숭배를 받고 성스러운 것으로 생각되는 경전의 위치를 획득했다. 논어의 첫 구절에는 세 가지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몰랐던 것을 배우고 때에 따라 익히면 즐겁지 않겠는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얼마 전 50년 지기(知己), 죽마고우(竹馬故友) 벗들이 나를 찾아왔다. 멀리서 친구들이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맞이했다. 2박 3일이 쏜살같이 지났고 우리들 이야기보따리는 수북하게 쌓였다. 우리가 함께한 추억들이 세상사는 기억으로 옅어져도 밤늦도록 우리들의 옛 추억거리를 찾고 쌓았다. 서로의 종교가 달라도, 서로 다른 여정이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랑스럽고 떳떳한 벗으로 어떤 상황이든 듬직하고 격려할 수 있는 친구이기에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지 귀 기울여 들으면서 충분히 공감하고 지지하는 시간이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가정에서 일어나고 체험되는 것이나, 수도공동체에 소속되어 한 일원으로 살아가며 겪는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얻은 것은 서로의 삶의 자리에서 따뜻한 사랑과 너그러운 인품을 지닌 진실한 이, 친구로 남아있고자 한다는 것이다.


기쁨의 원천인 배움은 무한하다. 더구나 그 기쁨을 함께할 벗이 먼 곳에서 찾아왔으니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했다. 현명히 살고자 노력하는 원의 속에 벗의 삶에 귀 기울이는 것 또한 배움의 연장이 되었고, 서로를 향한 격려와 지지로 받아들이기 충분했다. 친구들과 지낸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것 없이 남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지지하고, 지혜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벗들과의 귀한 시간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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