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2.09.01 12:03

순교의 영성으로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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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자렛 예수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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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짝 교우를 위한 예비자 교리 교육 과정 중 성월 교리 기간이 되었습니다. 성월 교리를 설명하며 특히, 9월 순교자 성월은 순교자들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하느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피의 순교로 증거한 사랑을 기억하는 달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순교자 성월은 신앙의 밑거름이 되신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본받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특별히 순교 성인들의 모범과 순교 정신을 기리고, 피를 흘리며 신앙을 지키는 순교는 아닐지라도 일상의 평범한 삶 안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각자의 삶 안에서 직면하게 되는 정보화의 물결, 이기주의와 세속주의의 물결, 생태환경의 위기) 안에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가정과 사회에서 하느님 눈으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바라보며 일상 안에서 작은 순교를 실천하는 ‘생활 속의 순교 영성의 삶’을 살아보도록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6개월의 교리 기간이 끝나고 세례성사를 받은 날, 새 영세자들이 성가정을 이루어 살게 된 것에 대한 소감과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한 형제님께서 ‘생활 안에서 순교 영성의 삶’을 산 것에 대한 소감을 나누고 싶다며 아주 작은 실천으로 본인이 받은 감사한 시간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30년 차 맞벌이 부부였던 형제님은 퇴직을 하시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매님의 섬세하지 못하거나 알뜰하지 못한 살림이 눈에 띄게 보였고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불만을 갖게 되셨습니다. 바로 그때, 자매님이 형제님을 외짝 교우 교리반으로 인도를 했습니다. 교리를 들으며 형제님은 ‘생활 속의 순교 영성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자매님에게 느꼈던 불편한 부분, 즉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되길 원했던 부분을 자매님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님이 직접 도와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매님이 식사를 준비할 때면 이리저리 어질러 놓은 양념통들을 보며 “이거 다 사용했으면 뚜껑을 닫아 넣어줄까?”라는 말과 함께 양념통들과 식재료들을 정리해 주었고, 세탁물도 종류별로 분류를 해서 세탁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자매님이 설거지를 할 때면 형제님은 집안 구석구석 널브러진 옷가지며 책들을 정돈했습니다. 이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을 지내다 보니 가사 일이 끝없이 힘든 노동임을 알게 되었고 그간 자매님이 형제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핀잔을 주고 음소거로 무언의 불만을 표했던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함께 맞벌이를 했던 시기에도, 퇴직 후에도 늘 가정의 대소사를 자매님께만 맡기고 방관적 자세로 있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자매님께 미안하다는 말과 일상의 대화 안에서 “고마워”, “수고했네”라는 감사의 언어를 자매님에게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왜 내게 그런 서운함을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이 형제님 손을 잡으며 “당신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신앙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만나게 되니 마음에 올라오는 서운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성가정을 이루어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자신에게는 정말 큰 선물이다.”라는 이야기로 형제님께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정말 아주 작은 집착의 포기이고 실천이었지만 삶 안에서 자신의 뜻을 내려놓으니 사랑과 평화의 은총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는 부부에게 모두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그곳에 함께한 모든 이의 마음 또한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해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을 시작하면서 우리들이 삶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순교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으로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겸손과 온유함으로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들을 품어 안는 작은 길을 걷는 것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이기심과 편리한 생활로 인해 생태·기후 위기에 처한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라는 소중한 것을 바라보지 못했던 이기적인 우리 자신의 마음과 눈을 예수님의 마음과 눈으로 변화시켜 생태 환경을 돌보고 우리 가족과 이웃을 돌보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보호하는 것, 또한 서로의 마음에 새 생명을 심어주며 하느님의 ‘善’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작은 순교일 것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자연을 아프게 하고, 함께하는 내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들에 대하여 자신을 솔직하게 살펴보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에 응답하도록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심어주신 그 희망의 씨앗을 발견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작은 길을 감사와 사랑으로 걸으며 하느님의 ‘善’을 우리 각자의 마음에 담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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