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3.03.03 10:01

물의 나라 방글라데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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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작은자매관상선교수녀회

수도 다카 공항을 벗어나니 숨 막히게 훅 밀려오는 더운 바람, 구걸하며 손을 내미는 어린 소년들, 키 큰 야자나무, 무슬림 사원의 둥근 지붕……. 한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과연 선교지에 왔구나 하고 실감했다.


방글라데시는 남아시아에 있는 무슬림 국가로 한때 동파키스탄으로 불렸으나 종교적 갈등으로 1971년에 분리 독립하였고, 한국의 1.5배 면적에 무려 1억 6천만 명이 살고 있어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며 빈부격차가 아주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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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슬럼가


우리 작은 자매들은 1977년 봄, 방글라데시의 두 번째 도시 쿨라의 가난한 동네, 물 위에 얼기설기 엮어 세운 집들 사이에 첫 프라테르니타(우리는 ‘분원’을 ‘프라테르니타’라고 부르는데 ‘형제애를 나누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다.)를 마련했고, 얼마 안 되어 그 곁에 수련소를, 그리고 17년 후, 1994년에는 다카 슬럼가에 세 번째 프라테르니타를 시작했다. 무료급식, 유따(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되는 삼 종류) 작업장, 이동진료소, 공부방(학원)…….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들, 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았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며, 같이 웃고 울었던 이야기 하나를 할까 싶다.


인근 슬럼가를 돌면서 어느 방 한 칸을 빌려 하루 간이 진료소를 연다. 웬만큼 아파도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사 먹을 꿈도 꿀 수 없는 그들에게는 우리가 가지고 가는 감기약, 신경통 약은 귀하다. 가끔은 그들이 약조차 타러 올 수 없는 중환자에게 우리를 안내하면 병원으로 모셔가기도 하는데 방글라의 여인들은 산후조리를 충분히 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자궁탈출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가 만난 한 여인의 상태는 너무 심각해 바로 앉아 있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아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딸은 농아인데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여인(빠르빈)을 국립병원에 입원을 시킬 수 있었지만 쉽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한 달이 지나도록 대기 상태로 기다릴 뿐이었다.


엄마가 집에 없는 한 달을 견디지 못한 아들이 집을 나가버려 할머니가 그 충격으로 거의 실성한 듯이 손주(샤민)를 찾아 헤맨다는 소식에 빠르빈은 어렵게 입원한 병원을 탈출하고, 모두는 샤민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이들이 불법 장기 매매자들에게 가끔 잡혀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달, 한 이웃이 샤민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왔다. 우리는 모두 기도의 응답이라고 느꼈다. 할머니는 미소를 되찾았고 엄마는 치료받지 못하고 말았지만 가난해도 가족의 끈끈한 정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많이 가진 자들의 전유물일까?
다 허물어져 가는 판잣집에 살면서 비가 한 번 내리면 물을 퍼내느라 밤을 지새우는 일이 있어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그들, 공사장에서 온종일 일을 하며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강인한 사랑에서 참 행복의 씨앗을 본다. 


가난한 가운데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의 삶은 참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묻게 하고 우리도 복음적 가난을 살라고, 깨어있으라고, 그들과 더 나누라고 자극하고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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