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10.26 10:49

마리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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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준호 라파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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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남양에 가고 싶었다. 외국의 유명한 성당 못지않은 성모마리아 대성당이 그곳에 있다. 60만 개의 붉은 벽돌이 쓰였으며, 밖에서 볼 때 가운데 두 기둥이 대칭을 이루며 탑처럼 보인다. 기둥 위에는 일곱 개의 종이 나란히 달려있는데 매 시각 화음을 내듯 울린다. 성당 내부는 더욱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탈리아 조각의 거장 줄리아노 반지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인상적이다. 똑같이 뒷면을 그린 양면화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가 설계하고 시공한 성전은, 비록 건축학도가 아니더라도 하나씩 짚어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병인박해 때 무명의 신자들이 순교한 남양에 국내 최초의 성모 순례지가 탄생하기까지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노고와 열정이 말할 수 없이 컸음이다. 


성지를 오르는 숲길 따라 화강석으로 다듬은 묵주알이 이어진다. 묵주기도를 하며 천천히 걸을 수도 있다. 모두 20단을 하게 된다. 문득, 하비에르 신부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이의 엄마는 원래 개신교 신자였다. 어느 날 아이가 추락하여 두개골 골절로 사경을 헤맸노라고 했다. 평소 가톨릭 신자인 시어머니의 권유를 강하게 거부해왔지만, 사고를 당하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를 살려주신다면 마리아께 기도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기도의 힘이었을까. 아이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의사는 머리를 심하게 다친 아이의 지능이 낮을 것이라 했다. 그 엄마는 추운 겨울날, 남양성지의 묵주 길을 맨발로 걸으며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성모상 아래 약수를 받아 아이의 밥을 지었다. 이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저능아일 것이라던 아이는 민족사관고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대학으로 유학했고 그곳의 교수가 되었다. 뼈가 없던 아이 머리에는 얇은 막이 생겨났다. 


그 엄마가 맨발로 걸었다던 로사리오 길을 가을날 걸어보았다. 오가는 신자들도 걸음을 멈춰 손으로 묵주 화강석을 만져보곤 했다. 가을 숲속 길 여기저기에 도토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 모양도 묵주알을 닮았다. 가을 산책길에서 엄마의 애원과 눈물을 떠올렸다. 절박한 심정으로 성모께 매달리던 엄마의 마음은 잔잔한 물결이 되어 나의 마음에도 와닿았다.


남양성지에서 책 한 권을 꼭 쥐고 있었다. 스페인 신부 산티아고 마르틴이 쓴 『마리아의 비밀』이다. 이 책은 성모 마리아의 독백으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예수의 제자 요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어머니로서 예수를 낳고 키운 과정, 아들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함께했던 일들을 알려준다. 인류가 미처 몰랐던, 어머니의 사연이기에 ‘비밀’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성경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구현된다. 정말 유럽 어느 수도원에 오랫동안 숨겨졌던 실제 책이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펼수록 신비롭다. 성모 마리아의 육성으로 다가오는 진실이 놀랍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경 내용을 그대로 담았기 때문이다. 복음서가 평면적이라면 ‘마리아의 비밀’은 생생하고 입체적이다. 이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가 서로 의지하며 영적으로 하나 되는 장면들이 가깝게 다가와 새롭다. 신기하게도 『마리아의 비밀』을 읽고 나면 다른 책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단연 책장의 첫 자리를 차지하는 『마리아의 비밀』이다. 이 책은 오늘날 가슴 아픈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것이다. 어머니께 마음껏 간구하는 신심도 자라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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