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진 보물 중엔 저의 딸과 아들이 유치원 시절에 했던 말들을 기록한 수첩이 있습니다. 처음에 아이들에게 보여줬을 때 자기가 했던 말이 얼마나 재밌고 특별했는지 표지에 칭찬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은 수첩인데요. 이제는 사춘기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매번 거절당할 때면 ‘놀자고 붙잡을 때 더 잘해줬어야 하는데’ 반성도 되고 아이들만큼 저도 더 어렸던 시절로 되돌아가 볼 수 있는 타임머신 같은 수첩입니다. 그렇게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저의 딸이 유치원을 다닐 때쯤 저에게 들려준 하느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하느님의 오줌이야.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하느님께서 아이들에게 뛰어놀아라 내리는 상이야.” 

아이들이 서로 싸우다가도 똥오줌 얘기만 나오면 한 몸인 듯 깔깔깔 으흐흐 웃을 때 당시에는 어이가 없어서 같이 웃기도 하고 순수함과 무례함 사이의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제 신앙이 얼마나 굶주렸으면 그 농담에도 채워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 손잡고 화단을 지나갈 때면 아이들에게는 하느님은 날씨에도 계시고 화단의 꽃에도, 돌멩이에도 계신다고 말해주었으면서 정작 저는 외롭다고 느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이젠 그만 양보해도 되잖아?’ ‘베풀지 말고 돈을 더 모아봐.’ ‘너만을 위한 시간을 좀 더 챙겨.’라고 부추기는 유혹에 흔들리고 넘어가는 제 곁에 이미 다 알고 계시는 하느님과 함께라는 것을 잊고 혼자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신앙’의 의미부터 검색해 보았습니다. 

신앙: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지키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

저는 하느님을 믿고 가르침을 항상 기억하고 지키며 순종하는 모범적인 신앙인이고 싶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대인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기심과 그럴싸하게 게으를 이유를 만들어주는 무력감에게 시의적절한 성경 구절을 찾아내어 읽어주며 하느님의 방법으로 대처하는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권능이 있으심에도 무방비의 공감으로 제가 어리석은 결정을 해도 제가 살아 있는 한 스스로 알아채고 용서를 청할 때까지 기다려주신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믿음을 마음으로만 받지 말고 표현하기.

창밖에는 나무들이 손에 잔뜩 쥐고 있던 잎사귀와 열매를 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연신 사진을 찍어 주며 환절기가 아이들의 유년 시절만큼 짧고 귀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고해성사하기에 참 좋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