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11.01 15:39

미쳐서 미치게 되기를

조회 수 49
Extra Form
저자 문옥영 테오도라 시인

“달고 맛있는 과일 한 박스 오천 원, 칠천 원” 귀가 솔깃하게 하는 확성기 소리와 함께 트럭이 멈추어 선다.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지난주에 시장에서 샀던 한 박스 칠천 원짜리도 맛이 꽤 괜찮았다. 그 사이 값이 더 내린 걸까. 트럭을 기웃거리자 건장한 사내가 냉큼 한 박스를 비닐봉지에 담는다. 만 원을 내밀고 거스름돈을 기다린다. 그는 거스름돈 내줄 생각은 않고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 다짜고짜 미친년이라고 한다.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욕설이다. 


오천 원이 아니라 만 오천 원이라고 한다. 오천 원, 칠천 원이라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 내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미친년”을 반복한다. 지갑에 돈은 충분히 있지만, 험한 소리까지 들으면서 사고 싶지는 않다. 굴복하지 않으리라 작정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참아낸 끝에 만 원을 돌려받는다. 건장한 사내의 거친 말투는 그 자체로 폭력적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자꾸 뒤를 돌아본다. 혹시나 따라와 해코지할까 발걸음을 재촉한다. 


손님을 불러 모으기 위한 호객행위는 흔한 상술의 하나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을 제시하거나 거짓 홍보를 해도 예사로이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가 예사로이 여기는 곳곳에 싱싱하게 살아있는 달고 맛있는 유혹. 어딘가 의심스럽지만 솔깃한 꼬임이다. 믿을 수 없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그 대가는 배신감이요 결과는 불신이다. 불신은 폭력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믿음 깊은 사람도 절박한 상황에서, 욕심이 앞서는 순간 판단력은 흐려지고 유혹에 빠진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신혼부부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장만한 전셋집이 빈 깡통이란다. 은퇴 후 남부럽지 않게 살던 지인은 사기꾼에게 전 재산을 털리고 전전긍긍한다. 환한 대낮에도 호젓한 산책길에 들어서면 두리번거리게 된다.


푸른 하늘 눈부신 햇살 시원한 바람은 공평하게 주어지는데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사람들. 그 뒷모습은 참 쓸쓸하다. 서로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그 눈빛 참 서글프다. 


이 땅에서 성공하기 위해 한동안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정민,『미쳐야 미친다』)에 꽂혀 그야말로 미친년처럼 살았다. 이제 모든 것을 비우고 하늘을 바라본다. 마지막 남은 광기, 믿음, 소망, 사랑을 탈탈 털어서 하늘나라에 다다르기를 바란다.  


그가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고 믿었더라면, 트럭 행상을 하며 떠돌지라도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달고 맛있는 꼬임수를 쓰지는 않았을 테다. 거친 막말로 마음에 상처를 주지도 않았을 테다. 그가 “과연 의인에게는 결실이 있구나. 과연 세상에는 심판하시는 하느님께서 계시는구나.” 시편 58편 12절의 이 말씀을 은혜롭게 받아들이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그가 한없이 자비하신 하느님께 미쳐서 하늘나라의 경지에 미치게 되기를…….

 

231022 영혼의뜨락 백그라운드(홈피용).jpg


  1. 마산성요셉성당

    Date2023.12.13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124 file
    Read More
  2. 명례성지에서

    Date2023.12.07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143 file
    Read More
  3. 원칙을 찾으려 나와 우리를 되돌아보는 상평동성당

    Date2023.12.07 Category본당순례 Views382 file
    Read More
  4.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Date2023.11.30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57 file
    Read More
  5. 치명자산

    Date2023.11.30 Category시와 함께 떠나는 성지순례 Views24 file
    Read More
  6. 무방비로 곁에 계신 하느님

    Date2023.11.23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30 file
    Read More
  7. 왕이신 예수님 본받아 사랑을 키우는 삼천포성당

    Date2023.11.23 Category본당순례 Views272 file
    Read More
  8. 시집 『파주기행』은 신앙기행

    Date2023.11.16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34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8 Next
/ 3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