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4.02.01 10:48

허상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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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규준 바오로 시인

문득, 뒤돌아보니 무심하게 6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야속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세월의 강은 흘러왔고, 지금도 도도히 흐르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각본 없는 삶의 무대에서 뜬구름을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렀던가. 어쩌면 이승에선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얄팍한 승리를 얻기 위해 당긴 화살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왔다. 이제는 인생의 반환점을 지나 한참을 더 달려 저녁노을처럼 장년에 접어든 지금, 그동안 어깨를 짓눌렀던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지난날을 되새김질해 본다. 


나의 의지, 선택과는 무관하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지만, 삶은 너무나 소중하다고 어릴 적부터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 삶. 그래서 내던져진 망망대해, 돛단배에 몸을 의지한 채 거센 파도와 싸우면서 부단히 노를 저어왔다. 그동안 삶의 여정이 진정 아름답고 행복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연속이었던가. 


나 자신이 청년기에 영세를 받고 주님을 외면한 냉담의 시간이 상당히 길었다. 삶의 최우선 가치를 세속의 성공에 두었음은 당연하다. 승진, 금전, 명예를 얻기 위해 몸부림쳤으며 때로는 부당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침반이 없는 항해였다. 종국적으로 가야 할 뚜렷한 목적지가 없이 순간순간의 세속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만 급급했다. 그동안,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어버린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나 다행히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은 길 잃어 방황하는 한 마리 양조차 외면하지 않으셨다. 또다시 신앙의 밧줄을 내려 주시어 주님의 품 안으로 되돌아오게 하셨다. 


주님의 말씀은 인생의 항해에 있어 나침반이다. 나침반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풍우가 불어도 정하여진 방향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래서 주님은 길이요, 생명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야만 될 분명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그랬듯이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오만한 인간은 때때로 자신이 하느님이 되고 싶어 하며, 따라서 자신이 나침반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여기에서부터 궤도를 이탈하게 되며 모든 불행의 시발점이 된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높아질 것이고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질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이 다시금 가슴에 와 닿는다.       


이제는 꿈의 씨앗을 뿌리기보다 맺혀 있는 열매를 여물게 하고, 채우기보다는 하나 둘 비워야 하는 나이,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뜨린 앙상한 겨울나무를 가슴으로 쳐다본다. 한때는 신록으로 우거져 온갖 새들이 드나들었으며, 한여름에는 오가는 이들의 더위를 식혀 줄 그늘을 드리웠겠지. 세상만사,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이승의 끝은 하느님 나라로 가는 또 다른 시작이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소중한 시간들. 앞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오로지 생명의 말씀만을 나침반 삼아 걸어가야겠다. 탈선은 더 이상 그만. 그래서 삶을 마감하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이승에서의 삶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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