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신앙
2020.01.16 10:42

한무숙의 <생인손> 속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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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숙은 인간 구원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쓴 작가인데 그 중심에는 가톨릭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생인손>은 그 대표적 작품이다.

구한말에서 6·25 이후에까지 이르는 표마리아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긴 일생 이야기이다.

 

주인공 표마리아 할머니는 여든일곱의 나이에 성당에 다니겠다고 영세를 받았는데

안신부는 어려운 교리문답은 생략하고 “예수님 마리아”만 외는 것으로 영세를 준다.

할머니는 이후 10년 동안 착실한 신앙 생활을 하는데 아흔일곱 나이의 어느날 처음으로 고백성사를 하겠다고 청한다.

 

이 소설은 이 할머니의 고백성사가 거의 전체 내용이다. (구한말 시기 할머니 어투 그대로여서 읽기에 다소 어렵다.)

그동안 조용한 성품이던 할머니는 갑자기 격렬한 흐느낌으로 지난 삶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길고도 험난했던 한 여인의 삶이었다.

 

여종인 어미에게서 태어난 ‘언년이’(표마리아 할머니의 이름)는 그 역시 주인집 아가씨의 몸종으로 살아간다.

아가씨가 시집가면서 그도 따라가는데 둘은 비슷한 시기에 딸을 낳는다.

언년이는 유모가 되어 제 자식 대신 아가씨 아기에만 젖을 먹이는 신세가 되고 만다.

 

어느날 병약한 아가씨도 요양차 친정으로 가고 어른들도 멀리 출타하여 집이 며칠 비게 되었다.

그는 천덕꾸러기처럼 골방에서 지내던 제 딸이 생인손을 앓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어미로서 감정이 복받쳐 손이 ‘나을 때까지’만이라고 생각하면서 아가씨 딸과 바꿔치기를 한다.

좋은 환경에서 제 딸을 입히고 먹이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그만 제자리로 돌려놓을 기회를 놓치고 만다.

아기의 생인손은 나았지만 이후 손가락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였다.

 

아가씨는 결국 병으로 죽고 아무도 아이가 바뀐 것을 모른 채 세월이 흐른다.

그러나 운명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아 상전 집안은 격변기 속에 풍비박산이 나고 이후 전쟁의 소용돌이에 다들 뿔뿔이 흩어진다.

전후에 거지처럼 떠돌던 할머니는 우연히 대학 교수가 된 ‘정간난’(제 딸로 데려다 키운 상전의 딸)을 만나 그 집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서 손가락 하나가 짧은 식모를 만나게 된다.

모녀의 종살이 운명이 끈질기게 이어진 것이다.

 

할머니는 이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지금껏 살아 왔다. 그리고 그 모든 죄를 눈물로 쏟아낸 고해성사를 한 것이다.

 

할머니의 긴 이야기는 끝났다. … 그 긴 이야기는 분명 영혼의 부르짖음이었으나 죄의 고백이라기보다 한을 토해내는 지극히 토속적인 한숨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신부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는 감았던 눈을 떴다. 마리아 할머니는 앉은 채 졸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은 무표정하고 평화로웠다. 한에서도 풀려나고 죄에서도 벗어난 얼굴이었다.

 

표마리아 할머니는 교리문답도 모르고 고해성사 한번 제대로 한 적도 없다.

그러나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였고 구원을 청하였으며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믿었다.

참된 신앙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신부는 노파의 머리 위에 성호를 그었다.
“주의 평화가 그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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